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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의 딸을 거두어 키운 선비 (출처 - 청구야담)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원수의 핏줄임을 알면서도 고아가 된 어린 소녀를 거두어 친딸처럼 키워낸 늙은 선비의 위대한 용서와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결말을 담았습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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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내 가문을 처참히 멸문지화로 몰아넣은 철천지원수. 그 원수의 핏덩이 같은 어린 딸이 눈보라 치는 길바닥에 버려진 것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피 끓는 복수 대신 가여운 생명을 거두어 친딸처럼 키워낸 한 늙은 선비의 위대한 용서. 미움의 사슬을 끊고 기적 같은 해피엔딩을 완성한 눈물겨운 감동 실화가 지금 시작됩니다.

    ※ 1: 눈보라 치는 저잣거리, 원수의 핏줄과 마주친 늙은 선비

    살을 에이는 듯한 섣달그믐의 삭풍이 한양 도성을 매섭게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려, 온 세상을 하얗고도 차가운 적막 속으로 몰아넣었다.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날카로운 창처럼 매달렸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춥고 스산한 저잣거리 한구석, 남루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한 늙은 선비가 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조정에서 꼿꼿한 대쪽 선비로 이름이 높았던 송 선비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과거의 영화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십 년… 꼬박 십 년이 흘렀구나. 아버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신 지가 엊그제 같은데, 야속한 세월은 멈추지도 않고 흐르는구나.'

    송 선비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시퍼렇게 멍든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리 잡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권신이었던 김 대감. 그자의 간악한 모함으로 인해 송 선비의 아버지는 역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를 뒤집어쓰고 목숨을 잃었고, 대대로 명예를 중시하던 가문은 하루아침에 멸문지화의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송 선비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채 도성 변두리의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은둔하며 숨죽여 살아왔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송 선비가 씹어 삼킨 피눈물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밤마다 아버님의 억울한 원혼이 꿈에 나타나는 듯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부지기수였고, 하늘을 우러러 김 대감을 향한 처절한 저주를 퍼부은 날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 하늘의 그물이 드디어 그 간악한 자를 옭아맸다. 권력의 정점에서 안하무인으로 권세를 휘두르던 김 대감이 결국 또 다른 권력 투쟁에 휘말려 대역죄인으로 몰린 것이다. 김 대감은 사약을 받았고, 그의 일가친척은 모두 관비로 끌려가거나 참수를 당하며 철저히 몰락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며 통쾌해했지만, 송 선비의 마음은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원수가 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건만, 어찌하여 이리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리단 말인가. 아버님이 살아 돌아오시는 것도 아니요, 무너진 내 가문이 다시 일어서는 것도 아닌 것을….'

    눈보라를 뚫고 싸늘한 상념에 잠겨 걷고 있던 송 선비의 발걸음이 돌연 한 낡은 다리 밑에서 멈칫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다리 교각 아래, 거적때기 하나를 간신히 뒤집어쓴 채 덜덜 떨고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피기가 하나도 없는 파리한 입술과 푹 꺼진 두 뺨, 맨발로 얼어붙은 땅바닥을 딛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를 보자, 송 선비는 자신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차며 다가갔다.

    "이런 쯧쯧… 이 모진 추위에 어미 아비도 없이 홀로 버려진 것이냐. 가엾은 것."

    송 선비가 허리춤에서 조심스레 따뜻한 온기가 조금 남아 있는 구운 고구마 반쪽을 꺼내어 아이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가, 이 고구마를 좀 먹어 보거라. 그리 떨고만 있다가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얼어 죽을 것이야."

    아이는 인기척에 깜짝 놀란 듯 커다란 두 눈을 번쩍 떴다. 흙먼지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송 선비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들고 있던 고구마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니… 이럴 수가! 저 눈매와 저 콧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간악한 자의 얼굴과 어찌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비록 땟물이 졸졸 흐르고 여윈 얼굴이었지만, 아이의 이목구비는 십 년 전 자신을 굽어보며 비열한 조소를 흘리던 원수 김 대감의 이목구비와 소름 끼치도록 빼닮아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추위를 이기려 웅크리는 바람에 벌어진 저고리 섶 사이로, 반짝이는 옥패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송 선비의 예리한 시선에 포착되었다. 최고급 백옥에 섬세하게 새겨진 모란꽃 문양. 그것은 다름 아닌 김 대감 가문의 적장자들에게만 물려준다는 바로 그 귀한 신물이었다.

    '틀림없다. 이 아이는 한 달 전 멸문지화를 당한 김 대감의 핏줄이다! 관비로 끌려가던 도중 홀로 도망쳐 나와 이 험한 저잣거리를 헤매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확신이 서자 송 선비의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눈보라의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십 년을 억눌러왔던 분노와 증오가 시뻘건 불길이 되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원수의 핏줄이다. 내 아버지를 죽이고 내 집안의 씨를 말려버린 철천지원수의 손녀가 지금 가장 비참한 꼴로 내 발밑에서 벌벌 떨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내게 복수할 기회를 주신 것이로구나! 내 아버님이 당하셨던 그 억울함과 고통을, 저 어린것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조금이나마 갚아주시려는 천지신명의 뜻이다. 그래, 모른 척 지나가면 그만이다. 이 모진 눈보라 속에서 내일 아침이면 저 아이는 흔적도 없이 꽁꽁 얼어붙은 시신이 되어 발견될 터. 그것이 바로 인과응보요, 천벌이 아니더냐!'

    송 선비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홱 몸을 돌렸다. 눈밭을 밟으며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에는 모진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채 열 걸음을 떼기도 전에, 등 뒤에서 가늘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흘러들었다.

    "할아부지… 살려, 살려주세요…. 너무, 너무 추워요…."

    가느다란 신음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송 선비의 등줄기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송 선비의 꼿꼿하던 어깨가 무언가에 짓눌린 듯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다, 안 돼! 저 아이의 할아비는 내 가문을 도륙한 악마였다. 저 피 속에는 그 악독한 자의 핏물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을 터! 어찌 저런 씨앗을 가엾다 여길 수 있단 말인가. 내 아버님의 피눈물을 잊었단 말인가!'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복수의 당위성을 외치고 있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가녀린 숨소리는 선비로서 평생을 지켜온 측은지심과 인간의 도리를 처절하게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눈보라는 더욱 거세게 몰아쳤고, 송 선비는 망연자실한 채 칼바람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2: 복수와 연민 사이에서의 갈등, 소녀를 몰래 거두어들이다

    매서운 삭풍이 귓가를 때리는 다리 밑, 송 선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십 년의 한이 서린 원수의 핏줄. 이대로 버려두면 눈더미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둘 것이 자명했다. 그것이 하늘의 순리이자 복수라고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돌아선 그의 가슴속에서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었다.

    '아버님…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저 아이를 버려두면 제 가슴의 한은 풀릴지 모르나, 평생 짐승만도 못한 냉혈한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죄는 그 간악한 자에게 있지, 저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 핏덩이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선비로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것은 아버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일 터이지요.'

    결국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십 년의 증오를 이겨내고 말았다. 송 선비는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 다시 다리 밑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송 선비는 서둘러 자신의 낡고 얇은 도포 자락을 벗어 아이의 몸을 겹겹이 감쌌다.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아이를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고는 눈보라를 뚫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성 외곽의 쓰러져가는 초가집. 삐걱거리는 사립문을 밀고 들어선 송 선비의 모습에, 집안을 지키던 늙은 하인 덕구가 깜짝 놀라 달려 나왔다. 가문이 몰락한 뒤에도 유일하게 곁을 떠나지 않고 십 년째 송 선비를 모셔온 충직한 종이었다.

    "아이고, 대감마님! 이 눈보라 속에 외투도 없이 어딜 다녀오신 겝니까! 헌데 그 품에 안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요?"

    "덕구야! 어서, 어서 아랫목에 군불을 지피거라. 땔감이 없으면 부엌의 기둥이라도 뽑아서 불을 때야 한다! 그리고 찬장에 남은 쌀을 박박 긁어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미음을 쑤어 오너라! 어서!"

    송 선비의 다급한 불호령에 덕구는 허겁지겁 아궁이로 달려가 불을 피웠다. 방 안으로 들어온 송 선비는 꽁꽁 언 아이를 따뜻한 아랫목에 뉘고는 굳은 손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바닥이 절절 끓기 시작했고, 아이의 핏기 없던 얼굴에 미세하게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덕구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맑은 미음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님, 미음을 내왔습지요. 헌데 이 아이는 뉘 집 자식이기에 이리 처참한 몰골로…."

    덕구가 미음 그릇을 내려놓으며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순간,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덕구 역시 십 년 전 김 대감 집안의 사람들에게 끌려가 모진 몰매를 맞았던 기억이 생생했다. 덕구의 시선이 아이의 저고리 섶에 달린 백옥 모란 패에 머물렀다.

    "마… 마님! 이, 이 옥패는… 그리고 이 얼굴은! 마님, 정녕 제정신이십니까요! 이 아이는 우리 가문을 풍비박산 낸 그 철천지원수, 김 대감 놈의 핏줄이 아닙니까요! 어찌 호랑이 새끼를 제 발로 집안에 들이신단 말입니까!"

    덕구는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송 선비는 덕구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으며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쉿! 입 다물지 못할까! 동네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리 큰 소리를 내는 것이냐!"

    "마님! 이 아이를 당장 내다 버리십시오! 이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이 관아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대역죄인의 핏줄을 숨겨준 죄로 마님마저 멸문지화의 남은 화를 당하실 것입니다! 어찌 그 지독한 원수의 손녀를 살리려 하십니까!"

    덕구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송 선비 역시 참담한 표정으로 방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낮게 읊조렸다.

    "내들 어찌 몰랐겠느냐!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그 짐승 같은 자의 씨앗을 볼 때마다 내 속이 어떻게 끓어오르는지 네가 어찌 알겠느냐! 허나 덕구야… 이 핏덩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어른들의 더러운 탐욕과 권력 다툼 속에서 피어난 원한을, 왜 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의 피로 씻어내야 한단 말이냐. 나마저 이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둔다면, 내가 그토록 저주했던 김 대감 놈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

    송 선비의 피 끓는 절규에 덕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만 했다. 송 선비는 숟가락으로 따뜻한 미음을 떠서 호호 분 뒤, 아이의 입술 사이로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몇 숟갈의 미음이 넘어가자, 아이가 희미하게 신음을 내뱉으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초점을 잃었던 아이의 두 눈이 차츰 맑아지며 송 선비의 주름진 얼굴을 향했다.

    "할아부지… 따뜻해요…. 할아부지가 절 안아주셨어요?"

    가느다란 아이의 목소리. 원수의 손녀라는 끔찍한 꼬리표를 떼고 보면, 그저 부모 품이 그리운 여리고 맑은 한 명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티 없이 맑은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송 선비의 가슴속에 단단하게 쳐져 있던 증오의 벽에 쩍 하고 금이 가는 듯했다.

    '그래… 모진 악연은 내 선에서 끊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늘이 이 아이를 내 발밑에 떨어뜨려 놓으신 것은, 복수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용서를 통해 내 영혼의 지옥을 구원하라는 뜻이셨구나.'

    송 선비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자신의 커다랗고 거친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송 선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아이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아가…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애비가 널 지켜주마. 네 이름은 오늘부터 소화(小花)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작지만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 소화. 알겠느냐?"

    아이는 무슨 뜻인지 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안도한 듯 송 선비의 품을 향해 작은 몸을 파고들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원수의 핏줄을 친딸처럼 거두어들이기로 결심한 늙은 선비. 그것은 피로 얼룩진 과거를 끊어내고 새로운 인연의 꽃을 피우려는, 참으로 위대하고도 숭고한 용서의 시작이었다.

    ※ 3: 정체를 숨긴 채 이어지는 애틋한 동거, 피어나는 부녀의 정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 모진 눈보라가 치던 그 겨울밤의 일도 어느덧 오 년이라는 세월 저편으로 아스라이 물러났다. 쓰러져가던 송 선비의 초가집에는 이전에 없던 온기와 활기가 가득 차 있었다. 원수의 핏줄이라는 끔찍한 족쇄를 숨긴 채 '소화'라는 이름으로 송 선비의 품에 안긴 소녀는, 송 선비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아버님! 식사 다 마치셨사옵니까? 소화가 시원한 숭늉을 내왔사옵니다."

    올해로 열한 살이 된 소화는 그 나이 또래 아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영특했다. 아침이면 짹짹거리는 참새처럼 일어나 송 선비의 세숫물을 데웠고, 끼니때마다 부족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솜씨 좋게 나물을 무쳐 정갈한 상을 차려내었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건만 그녀의 심성은 비단결처럼 고왔고, 송 선비 앞에서는 늘 방긋방긋 웃는 해맑은 딸이었다.

    "오냐, 우리 소화가 끓인 숭늉은 정승 판서의 고깃국보다도 달고 시원하구나. 이리 와 앉아보거라. 어제 배운 논어의 글귀를 한 번 외워보겠느냐?"

    "예, 아버님!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이라 하였사옵니다.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반성한다…."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 소화의 모습을 보며 송 선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소화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송 선비는 소화가 원수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온 정성을 다해 그녀에게 학문과 예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가끔씩 끔찍한 환영이 송 선비를 괴롭히곤 했다. 소화가 글을 읽다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눈으로 송 선비를 쳐다볼 때면, 순간순간 십 년 전 김 대감의 그 교활하고 비열했던 눈빛이 소화의 얼굴 위로 겹쳐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송 선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천하의 몹쓸 피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이 아이가 장성하여 자신의 진짜 아비와 할아비가 역적으로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그들과 철천지원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아이는 과연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악귀로 변하지는 않을까.'

    의심과 트라우마가 독사처럼 고개를 쳐들 때마다, 송 선비는 서재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소화의 지극한 효심이었다.

    어느 해 혹독한 장마가 져서 며칠 내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던 늦여름이었다. 천장에 비가 새고 눅눅한 기운이 방 안을 채운 탓인지, 송 선비가 지독한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헛소리를 낼 만큼 위중한 병세였다. 늙은 하인 덕구가 급히 약을 지으러 나갔지만, 불어난 강물에 길이 막혀 이틀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님… 아버님, 정신 좀 차려보시옵소서. 제가 물수건을 갈아오겠사옵니다."

    소화는 꼬박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새우며 송 선비의 머리맡을 지켰다. 열한 살의 여린 몸으로 무거운 물동이를 나르느라 두 손은 퉁퉁 부어올랐고, 송 선비의 열을 내리게 하려 밤새도록 쉬지 않고 부채질을 했다. 송 선비가 헛소리를 하며 몸부림을 칠 때면, 소화는 자신의 작은 품으로 송 선비의 어깨를 꽉 끌어안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늘님, 부처님! 제발 우리 아버님을 살려주시옵소서. 불쌍한 고아를 거두어주신 은혜로운 분이시옵니다. 제 남은 수명을 모두 가져가셔도 좋으니, 부디 우리 아버님만은 살려주시옵소서!"

    열병의 안개 속에서 송 선비는 가물가물한 의식 너머로 소화의 피 맺힌 절규와 기도 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뜨거운 이마 위로 떨어지는 소화의 차갑고도 맑은 눈물방울을 느끼는 순간, 송 선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의심의 찌꺼기마저 눈 녹듯 하얗게 사라져 버렸다.

    '내가 짐승만도 못한 생각을 품었구나. 이 아이는 내 원수의 핏줄이 아니다. 이 아이는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수명마저 내어놓으려 하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더 숭고하고 진실한 내 딸, 내 피붙이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기적처럼 송 선비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힘겹게 눈을 뜬 송 선비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물수건을 꼭 쥔 채 자신의 머리맡에 엎드려 쓰러지듯 잠든 소화의 지친 모습이었다. 송 선비는 떨리는 손을 뻗어 소화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겼다. 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베갯잇을 적셨다.

    "소화야… 가엾은 내 딸아. 네가 나를 살렸구나. 십 년 묵은 원한의 지옥에서 나를 끄집어낸 것은 하늘이 아니라 바로 너였어. 이제 죽는 날까지 너는 하늘이 맺어준 내 유일하고 어여쁜 딸이다."

    원수의 씨앗이라는 악연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세월의 비바람과 진실한 사랑의 체온 속에서 그 어떤 혈연보다도 단단하고 깊은 부녀의 정으로 완벽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작은 초가집 위로 장마를 걷어낸 눈부신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4: 어엿한 여인으로 자란 소녀, 가문에 닥친 새로운 위기

    그로부터 또다시 칠 년이라는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갔다. 눈보라 속에서 죽어가던 다섯 살의 가엾은 핏덩이는 어느덧 열여덟 살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장성하였다. 소화의 자태는 마치 봄날의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 송이 백합처럼 청초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송 선비의 깊은 학문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서삼경을 줄줄 꿸 정도로 지혜롭고 총명했다. 송 선비의 가세는 여전히 빈한하여 초가삼간을 면치 못했지만, 부녀가 함께 기거하는 작은 마당에는 언제나 소화의 맑은 웃음소리와 송 선비의 온화한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소화는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하여 늙어가는 양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했고, 송 선비는 그런 소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난날의 모진 풍파와 원한을 모두 잊을 만큼 깊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하였던가. 평온하기만 하던 부녀의 삶에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도성 외곽을 다스리던 관할 사또로 조 철간이라는 자가 새로 부임해 온 것이 화근이었다. 조 사또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로 악명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색을 탐하는 호색한으로 고을의 반반한 처녀들을 강제로 수청 들게 하는 짐승 같은 자였다. 어느 날, 사냥을 핑계로 고을을 순시하던 조 사또의 눈에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소화의 모습이 띄고 말았다. 허름한 무명치마를 입었음에도 감출 수 없는 절세의 미모와 고고한 기품을 본 조 사또는 단숨에 음흉한 욕정을 품게 되었다.

    "허허! 이 촌구석에 저리도 눈부신 절색이 숨어 있었단 말이냐! 당장 저 계집이 뉘 집 여식인지 알아보거라. 내 오늘 밤 당장 저 아이를 관아의 안방에 들일 것이다!"

    사또의 명을 받은 이방과 포졸들이 송 선비의 초가집으로 들이닥친 것은 그날 해 질 무렵이었다. 우락부락한 포졸들이 사립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글을 읽고 있던 송 선비와 저녁을 짓던 소화가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이방은 거드름을 피우며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는 비열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보시오, 송 영감! 당신 딸 소화의 미모가 사또 나리의 귀에까지 들어가, 특별히 사또 나리의 일곱 번째 수청 기생으로 들이라는 어명이 떨어졌소이다! 가난한 집구석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터인데, 사또 나리의 첩실이 되면 평생 비단옷에 고기반찬을 먹을 테니 당장 절을 올리고 딸을 내어놓으시오!"

    그 끔찍한 말에 송 선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며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꼿꼿한 선비로 살아온 그에게, 애지중지 키운 금지옥엽 같은 딸을 탐관오리의 노리개로 바치라는 것은 죽기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네 이놈들! 당장 그 더러운 입을 다물지 못할까! 내 비록 가문이 몰락하여 초야에 묻혀 사는 늙은이에 불과하나, 내 여식은 뼈대 깊은 양반가의 법도를 배우고 자란 귀한 규수이다! 어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내 딸을 그 더러운 짐승 같은 자의 소굴로 보낸단 말이냐! 썩 물러가라!"

    송 선비가 불같이 호통을 치며 지팡이를 휘둘렀으나, 건장한 포졸들은 코웃음을 치며 송 선비를 거칠게 밀쳐버렸다. 힘없는 노구의 송 선비는 마당의 거친 흙바닥에 나동그라지며 피를 토하듯 기침을 쏟아냈다.

    "아버님! 아버님, 괜찮으시옵니까!"

    소화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송 선비를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방은 바닥에 쓰러진 송 선비를 내려다보며 뱀처럼 간악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늙은이가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만. 듣자 하니 당신네 가문은 역모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 죄인 집안이 아니오? 사또 나리께서 당신이 몰래 숨겨둔 빚 천 냥을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딸을 데려가겠다 하셨소. 만약 내일 아침까지 딸을 곱게 단장시켜 관아로 보내지 않는다면, 빚을 갚지 않은 죄와 관원을 능멸한 죄를 물어 당신을 하옥하고 이 집을 불태워버릴 것이오! 똑똑히 알아들었소이까!"

    포졸들이 낄낄거리며 마당을 빠져나가자, 초가집에는 무거운 절망과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억지로 꾸며낸 천 냥이라는 빚. 그것은 소화를 빼앗기 위해 조 사또가 쳐놓은 악랄한 덫이었다. 송 선비는 밤새도록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아아, 하늘이시여! 어찌 이리도 가혹하시옵니까! 원수의 핏줄임을 알면서도 내 목숨보다 귀하게 키워낸 내 딸이옵니다. 이제야 부녀의 정을 나누며 작은 행복을 누리려 하건만, 어찌 저 탐욕스러운 이리 떼의 아가리에 내 딸을 던져주라 하십니까!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가시옵소서!'

    방문 밖에서 아버님의 처절한 통곡 소리를 듣고 있던 소화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소리 죽여 오열했다. 열여덟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십 년 원한마저 씻어내고 온 평생을 바치셨다. 이제는 내가 아버님을 지켜드려야 할 차례다. 아버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사하시는 것을 내 어찌 두 눈 뜨고 지켜본단 말인가. 내 비록 여인의 몸이나, 결코 그 더러운 사또의 노리개로 순순히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소화는 옷고름을 단단히 여미고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녀의 맑고 깊은 두 눈동자에는 피를 토하는 듯한 비장한 결의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아버님을 구하겠다는, 위대한 수양딸의 목숨을 건 반격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 5: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수양딸의 지혜와 헌신

    밤이 깊어 온 세상이 잠든 삼경의 시각, 소화는 희미한 호롱불 아래에 정갈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또의 협박에 굴복하여 도망치거나 목숨을 끊을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송 선비가 지난 십수 년간 애타게 가르쳐주었던 조선의 율법서인 『경국대전』의 구절들과, 도성에 파다하게 퍼져 있던 조 사또의 갖가지 비리와 악행들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법과 이치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그 악랄한 자가 나를 범하려 한 죄뿐만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가짜 장부로 국고를 횡령한 죄를 모두 고발할 것이다. 마침 이웃 고을에 임금님의 밀명을 받은 암행어사 출두가 멀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 목숨을 걸고 어사 사또를 만나 이 원통함을 알리리라!'

    소화는 가느다란 붓을 들어 하얀 한지 위에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송 선비의 필체를 고스란히 빼닮은 그녀의 글씨는 힘이 넘치면서도 단아했고, 문장 하나하나에는 피 끓는 억울함과 세상을 향한 정연한 논리가 서릿발처럼 서려 있었다. 탐관오리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친 고발장이자, 죄 없는 아버님을 살려달라는 눈물겨운 탄원서였다. 밤새워 글을 완성한 소화는 그것을 명주 수건에 단단히 싸서 품속에 깊숙이 간직했다. 그리고 잠든 송 선비의 방문 앞에 엎드려 무언의 큰절을 올렸다.

    '아버님, 부디 이 불효 여식이 돌아올 때까지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천지신명께서 우리 부녀의 진심을 아신다면, 반드시 살아서 다시 아버님을 모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동이 트기 전, 소화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험준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암행어사가 머물고 있다는 이웃 고을 관아까지는 첩첩산중을 꼬박 반나절이나 걸어가야 하는 아득한 길이었다. 여인의 연약한 몸으로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치마가 찢기고 맨살이 긁혀 붉은 피가 흘렀다. 발에 신은 낡은 짚신은 진작에 다 해져 뾰족한 돌부리에 발바닥이 찢어졌지만, 소화는 입술을 꽉 깨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우리 아버님은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신다. 가야 한다.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

    정오가 훌쩍 지날 무렵, 온몸이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범벅이 된 소화는 마침내 이웃 고을로 향하는 길목에서 수십 명의 호위 무사들을 거느리고 지나가는 암행어사의 행차를 발견하였다. 기력이 다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소화는 초인적인 힘을 쥐어짜 내어 행차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며 흙바닥에 엎드렸다.

    "어사 사또 나리! 억울하고 원통한 백성의 호소를 들어주시옵소서! 제발 제 아버님의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갑작스러운 여인의 난입에 호위 무사들이 칼을 빼 들고 고함을 치며 소화를 에워쌌다.

    "네 이년!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당장 저 미친 계집을 끌어내어 장을 치거라!"

    포졸들이 거칠게 소화의 팔을 꺾고 질목을 잡으려 하자, 가마의 주렴이 걷히며 젊고 위엄 있는 암행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어라. 행색은 남루하나 눈빛이 예사롭지 않구나. 네 무슨 억울한 사연이 있기에 목숨을 걸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어사의 묵직한 물음에 소화는 꿇어앉은 채 품속에서 피 묻은 명주 수건을 꺼내어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소녀, 이웃 고을에 사는 송 선비의 여식 소화라 하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조 사또의 간악한 수탈과 악행을 낱낱이 적어 올린 고발장이옵니다! 조 사또는 죄 없는 제 아버님을 하옥하고 저를 강제로 겁탈하려 하고 있사옵니다. 부디 이 천한 여식의 글을 한 번만 읽어주시옵소서!"

    암행어사는 호위 무사를 시켜 그 서찰을 받아 들었다. 무심코 서찰을 펼친 어사의 눈이 순간 커다랗게 벌어지며 놀라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여인의 글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웅혼하고 유려한 필체, 그리고 『경국대전』의 조항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탐관오리의 죄상을 완벽하게 얽어맨 논리 정연한 문장력. 그것은 십 년을 수학한 대제학의 글에 비견될 만큼 완벽한 명문장이었다. 글의 말미에 양아버지를 살려달라며 피눈물로 호소한 절절한 문구에 이르자, 강직한 어사의 두 눈마저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놀랍도다! 초야에 묻힌 여식이 어찌 이토록 엄청난 학식과 지극한 효심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글 속에 담긴 송 선비라는 자의 가르침이 정녕 태산과 같구나.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악랄한 조 사또 놈을 내 오늘 당장 요절을 낼 것이다!'

    암행어사는 서찰을 고이 접어 품에 넣으며 소화를 향해 다급하고도 결연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네 아비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구나. 여봐라! 당장 행선지를 바꾸어 송 선비가 있는 고을 관아로 전력 질주하라! 내 오늘 그 썩어빠진 탐관오리의 목을 베고 이 고결한 여식의 아비를 반드시 구출해 낼 것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감격 속에서, 소화는 그만 긴장이 풀려 어사의 가마 앞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는 아버님을 살려냈다는 안도감에 더없이 평온하고도 눈부신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 6: 원한을 넘어선 위대한 사랑, 하늘이 내린 축복의 결말

    같은 시각, 송 선비의 고을 관아 앞마당은 살벌한 폭력이 난무하고 있었다. 조 사또는 기어이 약속한 아침이 지났음에도 소화가 나타나지 않자, 포졸들을 시켜 늙은 송 선비를 강제로 끌고 와 형틀에 묶어놓고 무자비한 매질을 가하고 있었다.

    "이 늙은 역적의 잔당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당장 네 년 딸년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내 이놈의 뼈와 살을 다 발라내고야 말 것이다!"

    송 선비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헐떡거리면서도, 두 눈만은 형형하게 빛내며 조 사또를 향해 피 섞인 침을 뱉었다.

    "퉤! 이 더러운 탐관오리 놈아! 내 딸은 하늘이 내리신 고결한 아이거늘, 네놈 같은 짐승의 더러운 손때가 묻을 바에야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내 목을 당장 치거라!"

    조 사또가 분노하여 직접 칼을 빼어 들고 송 선비의 목을 내리치려던 찰나였다. 관아의 커다란 대문이 우지끈 부서지며 수십 명의 역졸들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암행어사 출두야!!"

    천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함성과 함께, 마패를 번쩍 치켜든 암행어사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마당으로 들어섰다. 기겁을 한 조 사또와 포졸들이 칼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여봐라! 백성의 고혈을 빨고 무고한 선비를 겁박한 저 간악한 조 철간의 목에 칼을 씌우고 당장 하옥하라!"

    어사의 불호령에 관아 마당은 순식간에 탐관오리를 징벌하는 사이다 같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어사는 서둘러 형틀에 묶인 송 선비를 풀어주며 직접 그의 피 묻은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 어사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소화가 "아버님!" 하고 비명을 지르며 송 선비의 품으로 달려들어 오열했다.

    "소화야… 내 딸 소화야! 네가 무사했구나. 천지신명께 감사할 따름이다. 흑흑…."

    부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흘리는 감격의 눈물에 암행어사도 가슴 뭉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송 선비에게 말했다.

    "송 선비라 하셨소이까. 따님의 효심과 뛰어난 학식이 벼랑 끝에 선 그대를 살렸소이다. 헌데 그대의 존함을 듣고 보니, 십 년 전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참수를 당하신 대제학 송 대감의 자제가 아니시오?"

    송 선비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숙이자, 어사는 환하게 웃으며 송 선비의 두 어깨를 꽉 쥐었다.

    "염려 마시오. 한 달 전 그 간악한 김 대감이 처형당할 때, 과거 송 대감을 모함했던 모든 거짓 증좌들이 낱낱이 밝혀졌소이다. 전하께서 송 대감의 억울함을 깊이 통촉하시어 신원을 복권하시고, 그대의 가문에 빼앗겼던 모든 재산과 명예를 돌려주라는 어명을 내리셨소이다. 내 그대를 찾아 한양으로 모셔가려던 참이었는데, 이리 뵙게 되다니 참으로 하늘의 뜻이오!"

    그 말에 송 선비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땅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가문의 억울한 누명이 십 년 만에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부녀가 끌어안고 우는 사이 소화의 찢어진 저고리 섶에서 낡은 백옥 모란 패 하나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본 암행어사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잠깐… 저 옥패는 역적 김 대감 가문의 장손들에게만 내려진다는 신물이 아니오? 송 선비, 저 여식은 그대의 친딸이 아니었단 말이오? 설마 저 아이가 그대의 가문을 멸문시킨 원수 놈의 핏줄이란 말이오!"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역적의 핏줄을 숨겨준 것은 참형을 면치 못할 중죄였다. 호위 무사들이 다시 칼자루에 손을 얹자, 소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송 선비의 앞을 막아서며 무릎을 꿇었다.

    "나리! 모든 것은 이 천한 죄인의 핏줄인 소녀의 잘못이옵니다! 아버님은 그저 눈보라 속에서 죽어가던 핏덩이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주셨을 뿐이옵니다. 부디 저의 목을 치시고, 은혜로운 우리 아버님만은 살려주시옵소서!"

    그때였다. 늙고 병든 송 선비가 소화를 등 뒤로 감싸 안으며,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암행어사 앞을 태산처럼 막아섰다. 그의 눈빛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아비의 위대한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사 사또! 이 아이는 내 원수의 핏줄이 아닙니다! 이 아이는 원한과 복수라는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던 내 영혼을 구원해 준, 하늘이 내리신 나의 진실한 딸이옵니다!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 아니요, 나를 살리기 위해 십 리 산길을 맨발로 뛰어온 이 아이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이 어찌 핏줄보다 못하다 하겠습니까. 정녕 이 아이의 출신이 죄가 된다면, 이 늙은 아비의 목을 먼저 치시옵소서!"

    송 선비의 피 맺힌 절규와 소화의 오열이 관아 마당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암행어사는 쥐고 있던 칼자루에서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원수의 핏줄임을 알면서도 거두어 기른 선비의 숭고한 용서, 그리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을 건 수양딸의 지극한 사랑. 이 위대한 부녀의 정 앞에서 인간의 법과 연좌제의 사슬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땅에 떨어진 옥패를 자신의 발로 꽉 밟아 산산조각 내버렸다.

    "방금 내 발에 밟혀 부서진 것은 한낱 길가의 돌멩이일 뿐이오. 내 눈앞에 있는 이는 그저 아비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 최고의 효녀 소화와, 그런 훌륭한 여식을 길러낸 위대한 대제학의 후손 송 선비뿐이오. 내 전하께 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부녀의 정을 낱낱이 고하여 큰 상을 내리도록 청할 것이오!"

    그 말과 함께 어사는 흔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송 선비와 소화는 서로를 끌어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송 선비의 가문은 완전히 명예를 회복하여 한양의 커다란 기와집으로 돌아갔고, 임금은 소화의 지극한 효행을 치하하며 그녀를 송 선비의 정식 호적에 올려 양반가 규수로서의 완벽한 신분을 하사하였다. 원수를 사랑으로 품어 안은 송 선비의 위대한 용서는, 핏줄이라는 질긴 악연을 끊어내고 조선 팔도에서 가장 눈부시고 감동적인 기적의 꽃을 피워내며 영원한 해피엔딩의 전설로 아름답게 남게 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천사야담 시청자 여러분,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내 가문을 망하게 한 원수의 핏줄마저 사랑으로 품어낸 송 선비의 위대한 용서,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건 수양딸 소화의 눈물겨운 효심이 깊은 감동을 주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증오를 끊어내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여러분의 삶에도 이토록 따뜻한 기적과 사랑이 늘 함께하시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도 가슴 뭉클한 감동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