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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기방의 늙은 행수의 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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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나리, 제가 다시 사내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평양 기방을 주름잡던 대행수. 병들고 늙자 수하들에게 권력을 뺏기고 차가운 뒷방에 갇힙니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 밤, 그가 유일하게 지켜주었던 조선 최고의 기생이 은밀히 찾아옵니다. 은혜를 갚기 위한 그녀의 황홀한 비술이 시작되고, 죽어가던 늙은 호랑이가 짐승 같은 사내로 깨어납니다! 짜릿한 복수와 가슴 따뜻한 순애보, 지금 시작합니다.

    ※ 1: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의 추락

    대동강 위로 화려한 불빛이 부서져 내리는 평양의 밤. 조선 팔도에서 가장 물이 좋고 유흥이 끊이지 않는다는 평양에서도, 수십 개의 거대한 기방이 밀집해 있는 유곽 거리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뜯어대는 가야금 소리, 장구를 치며 부르는 기녀들의 간드러진 노랫가락, 그리고 돈과 권력을 거머쥔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밤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이 거대한 환락의 제국을 지배하는 자. 평양 일대의 기방 상권을 모조리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행수. 한때 그의 기침 소리 한 번에 평양감사조차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고, 장안의 내로라하는 호색한들도 그의 허락 없이는 기생의 옷고름 하나 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오만하고 거칠 것 없던 권력자에게도 세월의 무게와 병마의 그림자는 공평하게 찾아왔다. 기방 본채의 가장 깊숙하고 화려한 안방. 한때는 뜨거운 욕정과 생기가 넘쳐흘렀을 그곳은 이제 약탕기에서 풍기는 쓴내와 썩어 들어가는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방 한가운데 깔린 두꺼운 비단 요 위에는, 바위처럼 단단했던 기골은 온데간데없이 가죽만 남아 뼈에 들러붙은 늙은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쿨럭! 쿨럭! 끄으윽… 하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끔찍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핏덩어리가 꿀럭거리며 흘러내렸다. 초점이 흐려진 탁한 눈동자는 천장의 화려한 단청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날카로운 비수가 폐부를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안방의 육중한 미닫이문이 거친 마찰음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열렸다.

    "아이고, 행수 어르신. 아직도 명줄을 붙잡고 계십니까요? 징하게도 오래 버티십니다그려."

    비릿하고 조롱 섞인 목소리. 지난 십수 년간 행수의 발밑을 기어 다니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개처럼 충성스러웠던 수하 춘삼이었다. 그의 뒤로는 화려한 비단옷을 휘감고 분칠을 짙게 한 기방의 마담, 월향이 값비싼 부채로 코를 틀어막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휴, 방구석에서 아주 시체 썩는내가 진동을 하네. 춘삼아, 어찌 환기조차 시키지 않은 것이냐. 내 비단옷에 이 끔찍한 병자의 냄새가 밸까 두렵구나."

    월향의 가시 돋친 말에 행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네, 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허락도 없이 함부로 발을 들이느냐…! 당장,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허락? 하하하! 어르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십니까? 이제 이 거대한 본채 안방의 주인은 저 춘삼이란 말입니다. 늙고 병들어 오줌 똥도 못 가리는 송장 주제에, 아직도 대행수 행세를 하려 하십니까?"

    춘삼은 거침없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비 없이 늙은 행수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이… 이 배은망덕한 놈! 짐승만도 못한 놈! 헐벗고 굶주리던 널 거두어 밥을 먹이고, 글을 가르치고, 내 수족으로 만들어 주었거늘… 네놈이 어찌 나에게…!"

    "그러니까 이제 그 은혜, 푹 쉬시면서 돌려받으시라는 거 아닙니까! 어르신이 쥐고 있던 평양 기방 수십 곳의 명도장과 금고 열쇠, 전부 이리 내놓으시지요!"

    춘삼의 억센 손이 행수의 품속을 짐승처럼 뒤지기 시작했다. 행수가 안간힘을 쓰며 옥으로 만든 곡간 열쇠 꾸러미와 장부를 지키려 했지만, 병든 노인의 힘으로는 장정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춘삼이 우악스럽게 열쇠 꾸러미를 뜯어내자, 행수의 목에 걸려 있던 굵은 명주실이 툭 끊어지며 노인의 목덜미에 붉은 상처를 남겼다.

    "내놔! 다 내놓으란 말이다!"

    행수를 바닥으로 거칠게 밀쳐낸 춘삼은 장부와 열쇠를 손에 쥐고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방바닥을 구르며 피를 토하는 옛 주인을 향해 월향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르신. 평생을 호령하며 사셨으니, 마지막 가는 길은 조용하고 서늘한 곳에서 명상이나 하며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춘삼아, 뭣들 하느냐. 얼른 어르신을 모실 곳으로 옮겨 드려라. 영업하는 기방 한가운데 송장이 다 된 병자가 있으면 재수가 옴 붙는 법이야."

    월향의 턱짓 한 번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락부락한 사내 두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행수의 양팔과 다리를 마치 짐짝을 다루듯 거칠게 붙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이놈들… 놔라…! 내가… 내가 누군 줄 알고…!"

    가느다란 비명 같은 호통도 무용지물이었다. 사내들은 행수를 질질 끌고 화려한 안방을 나섰다. 온기가 도는 화려한 복도를 지나, 볕이 들지 않는 기방의 가장 구석진 곳. 땔감을 쌓아두고 버려진 물건들을 처박아 두는, 냉기만이 감도는 서늘하고 퀴퀴한 뒷방. 사내들은 불씨 하나 없는 차가운 흙바닥에 행수를 사정없이 내동댕이쳤다.

    "여기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시지요. 그것이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이 기방을 위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보은입니다."

    쾅!

    소름 끼치게 무거운 철제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한 줄기 빛마저 완전히 차단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노인의 몸을 덮쳤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내가… 이대로 죽는단 말인가. 저 들개 같은 놈들에게 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런 더러운 흙바닥에서 구더기처럼 죽어간단 말인가….'

    분노와 억울함에 피눈물이 흘렀지만,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은 바람 빠진 짐승의 허망한 신음뿐이었다. 누구 하나 찾아올 리 없는 차가운 뒷방. 행수는 그렇게 자신의 화려했던 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 2: 매화 향기와 함께 찾아온 구원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 이틀? 아니면 벌써 보름이 지난 것일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했다.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한 행수의 몸은 이제 죽은 고목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가죽을 뚫고 나올 듯 들썩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운 냉골 바닥에 뺨을 기댄 채, 그는 이대로 서서히 얼어 죽거나 굶어 죽으리라 체념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끔찍한 고통이 빨리 끝나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지며 저승사자의 발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있던 그때였다.

    달그락.

    미세한 쇳소리. 뒤이어 무거운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틈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문틈 사이로 푸스름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방 안의 어둠을 갈라놓았다.

    '저승의 문이 열리는 것인가….'

    행수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올렸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가녀린 인영. 밤바람에 흩날리는 고운 치맛자락 사이로, 아련하고도 짙은 매화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환각이 아니었다. 죽음의 냄새로 가득했던 방 안에 생생한 봄의 향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나리…."

    물기를 가득 머금은,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다가온 여인이 흙바닥에 쓰러진 행수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자체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부신 자태. 평양 일대에서 가장 아름답다 소문난, 아니 조선 팔도를 전부 뒤져도 견줄 자가 없다는 최고의 명기. 바로 설화였다.

    "설… 설화야…. 네, 네가 여길 어찌…."

    설화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 내리더니, 행수의 차갑고 거친 뺨을 적셨다. 그녀는 가늘고 떨리는 두 손으로 행수의 앙상한 손을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그 따스한 온기에 행수의 굳어 있던 심장이 미세하게 박동했다.

    "어찌 이리 되셨습니까…. 평양을 호령하시던 그 당당하신 분께서, 어찌 이리 참혹한 모습으로 버려져 계신단 말입니까…."

    설화의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로 짙게 떨리고 있었다. 행수는 흐려진 시야로 그녀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선녀가 마중을 나온 것인가. 아아, 이 아이의 손이 이토록 따스했단 말인가….'

    설화. 그녀는 이 유곽에 널린 수많은 기생들과는 결이 다른 여인이었다. 십 년 전, 지독한 가난 탓에 노름꾼 아비의 손에 끌려와 기방에 팔려 온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녀. 눈처럼 흰 피부와 애절한 눈빛을 가진 그 소녀를 품기 위해, 수많은 고관대작과 거상들이 천문학적인 재물을 싸 들고 와 그녀의 머리를 올려주겠다고 안달을 냈다.

    하지만 기방의 주인이었던 행수는 끝끝내 그녀의 동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엄청난 돈의 유혹 앞에서도 그는 설화를 방패처럼 막아주었다. 그저 춤과 노래, 가야금과 시조만을 익히게 하며, 그녀를 사내들의 욕정을 채우는 밤의 꽃이 아닌 하나의 고결한 예술가로 지켜주었다. "이 아이의 재주와 기품은 함부로 더럽혀질 것이 아니다." 그것이 행수가 설화를 지켜낸 이유였다. 설화는 그 크나큰 은혜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밤, 춘삼과 배신자들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목숨을 걸고 이 차가운 뒷방으로 은밀히 숨어 들어온 것이었다.

    "나리, 기운을 차리셔야 합니다. 제가 살려드릴 것입니다. 반드시, 예전의 그 당당하고 강건하신 사내로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설화는 품속에서 조심스레 작은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성껏 달여 온 온기가 남은 잣죽과, 작은 옥으로 만든 호리병을 꺼냈다. 그 병 안에는 매일 이른 새벽, 오염되지 않은 깊은 산속의 매화 잎에서 한 방울씩 긁어모은 맑은 새벽이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기름진 고기와 독한 탁주에 찌들어 탁해질 대로 탁해진 행수의 피를 정화하고 메마른 기혈을 깨우기 위한 비방이었다.

    "자, 입을 조금만 벌려 보시지요. 맑은 이슬로 메마른 속을 달래야 맺힌 기혈이 풀립니다."

    설화는 치맛자락을 끌어당겨 자신의 푹신하고 따뜻한 무릎 위에 행수의 앙상한 머리를 누였다. 그리고 옥 같은 손가락으로 이슬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그의 마르고 갈라진 입술을 적셨다. 달콤하고 서늘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며, 마치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단비가 스며들듯 죽어가던 오장육부를 적셨다. 뒤이어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떠먹여 주는 고소하고 따뜻한 잣죽은, 얼어붙었던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온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설화야… 어찌하여 내게 이리 마음을 쓰는 것이냐….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만 깔딱이는 늙은이일 뿐인데… 쿨럭!"

    "나리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고, 짐승들 틈바구니에서 제 존엄을 지켜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내가 저를 눕히려 침을 흘릴 때, 오직 나리 한 분만이 저를 사람으로 대접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설화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강인한 결의가 차올라 있었다.

    "이제는 제가 나리를 지킬 차례입니다. 그 짐승만도 못한 배신자 놈들에게 나리의 평생을 이리 뺏기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밤,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나리의 멈춰가는 숨통을 틔워낼 것입니다."

    설화는 남은 밤새도록 행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의 덮어주고, 끊임없이 그의 차가운 손발을 주무르며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버려진 병든 노인과 평양 최고의 기생. 그 차갑고 좁은 뒷방 안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은혜와 따뜻한 온기가 어둠을 밀어내며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 3: 기혈을 뚫는 최음향과 방중술

    달빛이 가장 짙어져 만물이 숨을 죽이는 깊은 밤. 설화는 방 한가운데 작은 청동 향로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붉게 타오르는 향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비좁고 차가운 뒷방을 금세 신비로운 공기로 가득 채웠다. 일반적인 절간의 향이나 기방의 방향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서역의 상인들을 통해 극비리에 들여왔다는 귀하디귀한 최음향(催淫香). 그중에서도 사람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여 메말라버린 사내의 양기를 억지로라도 끌어올리고, 막혀있던 기혈의 순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무서운 약효를 지닌 비향(秘香)이었다.

    독특하고도 관능적인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폐부로 깊숙이 스며들자, 바닥에 누워 있던 행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던 뺨에 붉은 달아오름이 번져갔고, 가늘고 위태로웠던 숨소리가 점차 빠르고 거칠어졌다.

    '이, 이것이 무슨 향이냐…. 몸속에서 잊혔던 불길이 이는 것 같구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어…!'

    행수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함께 낯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향이 방 안을 완전히 장악했을 무렵, 설화는 행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고 있던 비단 저고리의 고름을 풀었다. 스르륵 소리와 함께 얇은 비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어둠 속에서도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가녀린 어깨선과 풍만한 가슴선이 매혹적으로 숨을 쉬듯 오르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유혹이나 욕정을 채우기 위한 천박한 몸짓이 아니었다. 방중술(房中術).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은밀한 생명의 비술. 단전에 뭉쳐 있는 맑고 강력한 음의 기운을 상대의 몸으로 온전히 흘려보내, 병들고 죽어가는 육신과 음양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기적적으로 세포를 재생시키는 의식이었다.

    "나리, 지금부터는 옥체를 제게 온전히 맡기십시오. 굳어버린 뼈마디 하나, 말라붙은 혈관 한 줄기까지 제가 다시 빚어낼 것입니다."

    설화의 부드럽고 뜨거운 피부가 행수의 앙상한 가슴에 닿았다. 행수는 헉, 하는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얼음장 같던 그의 몸에 불덩이 같은 설화의 체온이 닿자, 몸속의 혈관들이 비명을 지르며 팽창하는 듯했다.

    설화의 손길은 기혈을 뚫는 침술과도 같았다. 그녀는 행수의 가슴 중심부터 시작해 아랫배의 단전까지, 막혀있는 혈도를 옥 같은 손가락으로 강하게 짚어 내렸다.

    "윽…! 크으윽…!"

    행수의 입에서 고통과 쾌락이 기묘하게 뒤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굳어졌던 근육이 억지로 찢어지고 늘어나는 듯한 끔찍한 고통 뒤에, 그 공간으로 설화의 따뜻한 생명력이 밀려 들어오는 황홀함이 교차했다. 설화의 붉은 입술이 행수의 목선과 귓바퀴를 타고 흐르며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최음향의 아찔한 기운과 설화의 체취가 한데 섞여 뇌수를 강타하자, 행수의 단전 깊은 곳에서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맹렬한 양기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리, 저의 눈을 보십시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저의 기운을 나리의 단전으로 강하게 끌어당기십시오. 절대 정신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설화는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행수의 이마에 맞대며 거친 숨을 내몰아쉬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하나로 얽히고, 좁은 방 안의 공기는 마치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황홀하고도 치열한 육체의 접촉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행수의 쭈그러든 근육들이 미세하게 경련하며 꿈틀거리더니, 이내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구부정하게 휘어버렸던 척추가 뚜둑 소리를 내며 펴졌고, 거무튀튀했던 피부 위로 붉고 신선한 피가 맹렬하게 역류하며 솟구쳤다.

    '뜨겁다… 온몸이 터져나갈 것처럼 뜨겁다!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구나! 멈출 수가 없어!'

    수십 년 전, 평양 유곽의 거리를 맨주먹 하나로 평정하며 사내들을 짓밟고 올라섰던 그 젊고 야성적인 사내의 폭발적인 기운. 그것이 설화의 헌신적인 방중술과 최음향의 기운을 완벽하게 흡수하며 부활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행수의 몸은 한 마리 거대한 맹수처럼 변해갔다. 이윽고, 기력을 회복한 행수의 거칠고 커다란 손이 자신 위에서 헐떡이는 설화의 얇은 허리를 강하게 으스러지듯 감싸 안았다. 그 압도적인 악력에 설화는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넓어진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야… 제가 알던 평양 제일의 호랑이 같은 나리로 돌아오셨군요…."

    동이 트고 새벽빛이 낡은 문틈으로 스며들 무렵. 죽음의 냄새로 가득했던 차가운 뒷방 안에는, 병든 늙은이의 끔찍한 기침 소리 대신 짐승처럼 펄떡이는 강인한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여인의 나긋한 교성만이 가득 차 있었다. 평양 기방 전체를 피로 물들일, 거대하고 끔찍한 폭풍의 전야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 4: 짐승으로 깨어난 대행수

    아침 해가 대동강 수면 위로 붉게 솟아오르며 중천을 향해 갈 무렵, 평양에서 가장 거대한 기방의 본채는 아침부터 왁자지껄한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젯밤 늙고 병든 행수를 차가운 뒷방에 처박아 둔 수하 춘삼과 마담 월향은, 이제 온전히 자신들의 세상이 도래했음을 자축하며 기생들을 끼고 질펀한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널찍한 안방 한가운데 놓인 최고급 자개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산더미처럼 차려져 있었고, 춘삼의 앞에는 행수의 품에서 억지로 빼앗아 온 기방의 장부들과 묵직한 옥단추 금고 열쇠 꾸러미가 전리품처럼 자랑스럽게 놓여 있었다.

    "자자, 오늘은 이 춘삼이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 첫날이니, 다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마시고 즐기거라! 이제 이 평양 바닥 수십 개 기방의 대행수는 바로 나, 춘삼이란 말이다! 으하하하!"

    "아유, 춘삼 오라버니도 참. 이제는 대행수 어르신이라 높여 불러야지요. 그 늙은구렁이 같고 깐깐하던 영감이 드디어 방을 뺐으니, 우리 기방도 이제 젊고 펄떡이는 피로 싹 물갈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엔 장안의 호색한들을 모조리 불러모아 성대한 연회를 엽시다요."

    월향이 교태가 뚝뚝 묻어나는 콧소리를 내며 춘삼의 잔에 찰랑찰랑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주변에 둘러앉은 덩치 큰 수하들도 일제히 잔을 부딪치며 새로운 권력자를 향해 구역질 나는 아부를 쏟아냈다.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차가운 흙바닥의 뒷방에서 얼어 죽어가고 있을 옛 주인을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오직 눈앞에 굴러떨어진 막대한 재물과 짜릿한 권력에 취해, 자신들의 천박한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바로 그 시각, 굳게 자물쇠가 잠겨 있던 기방 구석의 낡은 뒷방 안.

    고요한 어둠 속에서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던 행수가 번쩍 눈을 떴다. 탁하게 죽어 있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죽음을 앞둔 노인의 공포나 허망한 체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형형하고 매섭게 빛나는 안광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것이 진정 내 몸이란 말인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본 행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핏기가 가시고 앙상하게 말라붙어 시퍼런 핏줄과 뼈마디가 흉측하게 다 드러났던 팔에는, 어느새 바위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근육이 보기 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검무튀튀하고 쭈글쭈글하던 피부는 이십 대 젊은 사내의 그것처럼 팽팽하고 윤기가 흘렀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갈기갈기 찢어놓던 끔찍한 기침도, 뼛속을 갉아먹던 원인 모를 고통도 아침 이슬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대신,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양기와 폭발적인 힘이 온몸의 굵은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역동하며 흐르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자,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장이라도 눈앞의 바위를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괴력이 느껴졌다.

    그의 곁에는 밤새도록 자신의 모든 기운과 생명력을 짜내어 기적 같은 방중술을 펼친 설화가 지쳐 잠들어 있었다. 창백해진 고운 얼굴로 새근새근 얕은 숨을 내쉬는 그녀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행수는 커다랗고 듬직해진 손으로 설화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기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설화야… 네가 정녕 나를 살려냈구나. 너의 목숨을 깎아내어, 다 죽어가던 이 늙은 짐승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 같은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믿었던 수하들에게 배신당해 갈기갈기 찢겨 나갔던 자존심과 심장 위에, 설화가 목숨을 걸고 불어넣은 따뜻한 온기가 채워졌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모욕하고 내다 버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향한 거대한 분노와 살의가 교차했다.

    행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입고 있던 더러운 환자복을 찢어발겨 던져버리고, 방구석에 놓인 질긴 무명천을 길게 찢어 단단해진 허리와 하의에 거칠게 둘러맸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의 체구는 어젯밤 바닥을 기어 다니던 노인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구부정했던 허리는 태산처럼 꼿꼿하게 펴졌고, 쪼그라들었던 어깨는 방문을 가득 채울 만큼 떡 벌어졌다.

    그는 굳게 잠긴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밖에서 팔뚝만 한 굵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겹겹이 채워진 두꺼운 참나무 문. 행수는 심호흡을 한 번 길게 하더니, 단전에 기운을 꽉 모아 오른쪽 주먹을 힘껏 쥐었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두꺼운 참나무 문짝이 통째로 산산조각 나며 마당 밖으로 튕겨 나갔다. 쇳덩이 자물쇠와 쇠사슬마저 엄청난 파괴력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부서진 문틈과 자욱한 먼지를 뚫고 쏟아져 들어오며, 짐승처럼 완벽하게 부활한 대행수의 거대한 실루엣을 비추었다.

    마당으로 걸어 나온 행수는 구석에 굴러다니던 굵직한 참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성인 사내의 허벅지만 한 무식하게 두꺼운 몽둥이가 그의 커다란 손아귀에 가볍게 쥐어지자,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맞춤형 무기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춘삼이 이 배은망덕한 놈… 오늘이 네놈들의 사지를 찢어발기는 제삿날인 줄 알아라."

    그의 낮고 굵직한 쇳소리가 평양의 맑은 아침 공기를 가르고 묵직하게 진동했다. 거대한 참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척 짊어진 채, 살기를 뿜어내며 본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마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평양 기방을 피로 물들일, 무자비한 복수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 5: 배신자들을 향한 피의 응징

    본채 안방. 한참 왁자지껄하게 무르익어가던 술자리가, 밖에서 들려온 지진 같은 거대한 굉음에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 무슨 소리냐! 누가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야!"

    춘삼이 들고 있던 은술잔을 상 위에 탁 내려놓으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호위로 세워둔 덩치 큰 수하 두어 명이 허둥지둥 일어서서 창호지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려는 찰나였다.

    우당탕탕- 콰직!

    육중한 발길질 단 한 번에 안방의 거대한 미닫이문이 얇은 종잇장처럼 통째로 뜯겨 날아갔다. 문짝은 방 안쪽으로 곤두박질쳤고, 놀라 자빠진 사내들과 기생들의 얼굴 위로 박살 난 나무 파편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악! 내 눈! 눈이야!"

    "이,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리… 헉!"

    비명을 지르며 쌍욕을 내뱉으려던 춘삼과 월향은, 문턱에 선 거대한 인영을 보자마자 마치 백주대낮에 저승사자라도 마주한 듯 입을 쩍 벌린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눈부신 역광을 등지고 서 있는 사내. 떡 벌어진 어깨를 덮어내린 산발한 흑발 사이로, 사람의 것이라 볼 수 없는 번뜩이는 짐승의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불과 열두어 시간 전,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어 다니던 비루하고 앙상한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인육을 맛보고 갓 내려온 굶주린 젊은 호랑이 한 마리가, 분노로 이빨을 드러낸 채 그들을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 대행수 어르신…? 아, 아니야… 말도 안 돼… 귀, 귀신이다! 어떻게 송장이…!"

    춘삼은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채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월향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바들바들 떨며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분명 어젯밤 오늘내일하며 죽어가던 노인네였다. 그런데 어찌 하룻밤 새에 저토록 끔찍한 기운을 내뿜는 건장하고 거대한 사내로 탈바꿈할 수 있단 말인가!

    "왜들 그리 사시나무 떨듯 떠느냐. 죽은 송장이 무덤을 뚫고 걸어 나와서 기저귀라도 지린 것이냐?"

    행수의 입가에 서늘하고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 그 조소 섞인 미소가 채 떨어지기가 무섭게, 행수는 쥐고 있던 거대한 참나무 몽둥이를 허공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부웅- 퍼억!

    "크아악!"

    가장 먼저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고 달려들려던 덩치 큰 수하 한 명이, 허공을 가르는 몽둥이에 가슴뼈를 정통으로 맞고 저 멀리 방 안쪽 벽까지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 처박혔다. 콰직, 하는 소름 끼치는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는 단 일격에 기절해 버렸다. 그 압도적이고 공포스러운 괴력에 남은 수하들은 완전히 기가 질려 얼어붙었다.

    "이, 이 멍청한 놈들아!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저 괴물 놈을 쳐라! 빨리 쳐죽이란 말이다!"

    춘삼이 발악하듯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행수의 뿜어내는 압도적인 살기 앞에 감히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행수는 피 묻은 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올 때마다 춘삼과 월향은 바닥을 박박 기며 뒤로 도망쳤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금수만도 못한 버러지 같은 놈들. 내가 거둬들여 먹여 살린 똥개들이 감히 주인의 목줄을 물어뜯으려 하다니. 오늘 내가 친히 이 참나무 몽둥이로 네놈들의 그 더러운 뼈와 살을 분리해 개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행수의 커다란 그림자가 방 안을 덮쳤고, 그가 치켜든 몽둥이가 자비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아악!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르신! 제가 미쳤었습니다!"

    "악! 다리! 내 다리! 잘못했습니다! 목숨만은 제발!"

    화려했던 안방은 순식간에 끔찍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살이 터지는 소리, 그리고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행수는 단번에 숨통을 끊지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평생을 불구로 살아갈 만큼만의 정확하고 뼈저린 고통을 안겨주는 무자비한 타격으로 그들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짓밟아 유린했다. 한때 평양의 밤거리를 맨주먹으로 지배했던 무자비한 대행수의 야차 같은 본모습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팔다리가 꺾인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춘삼의 목덜미를 거칠게 밟아 누르며, 행수는 바닥에 흩어진 장부와 금고 열쇠 꾸러미를 다시 집어 들었다.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것들. 네놈들이 그토록 탐내고 침을 흘린 것이 고작 이깟 종이 쪼가리와 쇳덩이더냐."

    "어르신… 제,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개처럼 기겠습니다요…."

    춘삼은 이빨이 다 부러진 입으로 피 거품을 물며 행수의 발등에 얼굴을 비비며 애원했다.

    "내 목숨을 구걸하는 벌레를 밟아 죽이는 취미는 없다. 목숨을 붙여두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당장 이 평양 땅에서 네놈들의 흔적을 지우고 떠나거라. 만약 다시 내 눈에 띄거나 내 사람의 곁을 얼쩡거리는 날에는, 네놈들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대동강 물고기 밥으로 던져줄 것이다! 꺼져라!"

    행수의 일갈에 춘삼과 수하들은 부러진 팔다리를 질질 끌며, 피눈물을 흘리며 짐승처럼 기어서 방 밖으로 도망쳤다. 피로 낭자하게 물든 기방의 아침.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기생들과 하인들은 그 잔혹하고도 압도적인 무력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일제히 바닥에 이마를 박고 벌벌 떨었다. 늙고 병들어 차가운 뒷방에 버려졌던 이빨 빠진 호랑이가,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과시하며 다시 권력의 정점에 완벽하게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 6: 아담한 초가집의 평화

    기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피비린내 나고 처절하게 진압한 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평양 유곽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대행수의 묵직한 발아래 완벽하게 통제되었고, 감히 그를 배신하거나 반기를 들려는 자는 씨가 말라버렸다. 병들어 죽어가던 노인이 하룻밤 새에 기적적으로 젊음과 괴력을 되찾아 몽둥이 하나로 수십 명을 박살 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평양 바닥 전체에 전설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끔찍한 피의 응징이 끝난 후 행수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공허해져 있었다. 화려한 비단 방석에 앉아 금고에 산처럼 쌓인 금괴와 막대한 은자들을 내려다보아도, 예전처럼 피가 끓어오르거나 성취감이 들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헐떡이던 그 차갑고 어두웠던 뒷방을 떠올렸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짓밟고 일궈낸 권력과 돈은, 숨이 멎어가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 아무런 온기도, 위로도 되어주지 못했다. 그 끔찍하고 고독한 절망의 순간에, 오직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다가와 온기를 나누어 준 사람. 세상에 오직 설화 한 명뿐이었다.

    '다 헛되고 부질없는 짓이었어. 내가 이깟 기방 수십 개를 쥐고 흔든들, 내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고 그 차가운 바닥에서 죽어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행수는 즉시 결단을 내렸다. 그는 평양에서 가장 자금력이 막강하고 입이 무거운 거상과 객주들을 은밀히 자신의 거처로 불러들였다.

    "내 소유로 된 평양 일대의 모든 기방과 노른자위 땅, 그리고 상단들의 지분을 전부 처분할 것이다. 시세보다 조금 싸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모조리 현금과 금괴로 바꾸어 내 앞에 대령하거라."

    "대, 대행수 어르신! 갑자기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십니까! 평양 밤거리의 상권을 전부 포기하고 넘기시다니요! 이 어마어마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어찌…!"

    객주들은 기절초풍하며 만류했지만 행수의 단호한 눈빛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내 결심은 확고하니 단 며칠 안에 모든 문서를 정리해라."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평양 거리를 쥐락펴락하던 거대한 밤의 제국이 해체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수는 기방과 상단을 처분한 어마어마한 재산을 수십 개의 거대한 참나무 궤짝에 나누어 꽉꽉 채워 담았다. 평생을 먹고 놀아도 다 쓰지 못할 엄청난 부였다. 그리고 그는 관아를 통해 그 모든 궤짝의 명의와 남은 재산의 권리를 단 한 사람, 기녀 설화의 이름으로 완전히 돌려놓았다.

    "나리… 이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기방을 전부 처분하셨다니요? 대체 어찌하시려고…."

    아무것도 모른 채 행수의 부름을 받고 방에 들어온 설화는, 방 안을 가득 채운 금괴와 재물 궤짝들을 보며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수는 온화하고 깊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설화의 작고 고운 두 손을 자신의 커다란 두 손으로 꽉 감싸 쥐었다. 예전의 그 뼈만 남아 거칠었던 노인의 손이 아닌, 크고 듬직하며 펄떡이는 맥박이 느껴지는 젊은 사내의 따뜻한 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네 것이다, 설화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서늘한 뒷방에서 한 줌 흙이 되어 잊혀졌을 목숨. 네가 너의 생명력을 깎아 이 비루한 늙은이를 다시 살려냈으니, 내 남은 생은 오직 너만을 위해, 너의 사내로서 함께 보내고 싶구나."

    "나리…."

    "이 더럽고 피비린내 나는 평양 바닥의 권력도, 돈도 이제는 다 지긋지긋하다. 짐승들 틈바구니를 떠나자꾸나. 저 멀리 남도의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작고 아담한 집을 한 채 짓고, 아무도 모르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너와 나 둘이서만 조용히,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다. 나의 여인이 되어 나와 함께 가주겠느냐?"

    설화의 크고 맑은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자신에게 기생이라는 천한 굴레를 씌우지 않고 오직 한 명의 고결한 여인으로 지켜주었던 유일한 사내.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가진 그 모든 무소불위의 권력마저 초개처럼 던져버리고 자신만을 바라보겠다는 이 거대하고 강인한 사내의 넓은 품에, 설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깊숙이 안겼다.

    그로부터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 평양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남도의 어느 한적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산골짜기.

    연분홍 복숭아꽃이 눈이 시리도록 흐드러지게 피어난 작고 아담한 초가집 마당에서, 윗도리를 벗어 던진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지런히 도끼질을 하며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사내의 태산 같은 등 근육이 꿈틀거렸고, 구릿빛 팔뚝에는 건강하고 굵은 땀방울이 맺혀 빛났다.

    "서방님, 날이 덥습니다. 고된 일은 그만 내려놓으시고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 드시고 하셔요."

    수수한 무명 치마에 앞치마를 단정하게 두른 고운 자태의 여인이, 툇마루에 맑은 차와 달콤한 다과를 내오며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웃었다. 사내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껄껄 웃더니, 쥐고 있던 묵직한 도끼를 툭 내려놓고 여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뺨에 묻은 꽃가루를 닦아주었다.

    과거 평양의 밤을 피로 물들이며 무자비하게 호령했던 대행수와, 모든 사내의 애간장을 녹이던 평양 최고 명기의 화려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며, 소박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은 평범하고 행복한 필부필부(匹夫匹婦)만이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에 날린 연분홍 복숭아 꽃잎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소복하게 내려앉으며, 죽음을 이겨내고 짐승처럼 회춘한 사내와 그를 살려낸 아름다운 여인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평화롭고 따스한 봄날의 풍경 속으로 영원히, 그리고 아스라이 녹아들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양반야담,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권력의 최정점에서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졌던 노인이, 자신이 지켜주었던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과 비방술로 기적처럼 젊음을 되찾고 통쾌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재물과 권력을 버린 채 사랑하는 이와 떠난 뒷모습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기네요. 진정한 부귀영화는 어쩌면 내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의 따뜻한 진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리고요! 저는 다음 시간에도 더욱 은밀하고 가슴 뛰는 흥미로운 조선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하고 따뜻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