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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훔치는 손에서 베푸는 손으로 : 뒷골목 늙은 소매치기, 장터 고아들을 조선 최고의 상단으로 키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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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평생 남의 주머니를 털며 살아온 운종가 전설의 소매치기. 늙고 병들어 은퇴한 그의 눈앞에, 옛날의 자신처럼 매를 맞으며 도둑질을 하는 고아들이 밟힙니다. "내 이놈들에게 도둑질 대신, 사람답게 사는 장사치 기술을 가르치리라!" 뒷골목 밑바닥 인생들이 조선 최고의 상단으로 거듭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운종가 늙은 소매치기

    한양 도성의 중심, 사람과 재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하여 이름 붙여진 운종가의 아침은 언제나 활기로 넘쳐흘렀다. 보신각 종소리가 도성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면,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온갖 기이한 물건들과 상인들의 활기찬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비단 냄새, 갓 구워낸 엿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뜨거운 숨결이 뒤섞인 이곳은 조선 제일의 번화가이자 생존의 전쟁터였다.

    그 눈부신 번화가의 끄트머리, 처마 밑 짙은 그림자 속에 한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낡고 해진 무명 두루마기에 굽은 등, 그리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며 걷는 이 사내의 이름은 덕배였다. 지금은 그저 장터를 배회하는 초라한 늙은이에 불과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그는 운종가 뒷골목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다. '귀신 손'이라 불리며 양반들의 두툼한 비단 전대부터 상인들의 엽전 꾸러미까지, 표적으로 삼은 것은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관아의 포교들에게 쫓기다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그 날 이후, 덕배의 화려했던 뒷골목 인생도 끝이 났다.

    '내 평생 남의 주머니나 털며 아등바등 살았건만, 늙고 병든 지금 내 손에 남은 것은 이 망가진 몸뚱이와 텅 빈 바람 소리뿐이로구나. 정직하게 흘린 땀이 아니니,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거늘….'

    덕배는 자신의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화려했던 기술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밥숟가락조차 제대로 쥐기 힘들 정도로 수전증이 찾아온 손이었다. 그가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건너편 유기전(놋그릇 가게) 앞에서 날카로운 호통 소리와 함께 요란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이 거지 같은 놈!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 오늘 아주 뼈도 못 추릴 줄 알아라!"

    육중한 체구의 유기전 주인이 몽둥이를 치켜들고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발밑에는 때에 전 누더기를 걸친 깡마른 사내아이가 웅크린 채 매를 맞고 있었다. 아이의 품에서는 훔치다 만 작은 놋숟가락 하나가 바닥으로 뒹굴었다.

    "잘못했습니다요, 나리! 사흘을 굶어서… 흑흑, 눈이 뒤집혔나 봅니다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이는 두 손을 싹싹 비며 애원했지만, 상인의 몽둥이찜질은 멈추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빙 둘러서서 혀를 찰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이는 없었다. 장터에서 도둑질하다 걸린 놈은 반 죽음이 되도록 맞아도 싸다는 것이 이 바닥의 무언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덕배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 멈칫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덜덜 떠는 아이의 눈빛, 그 처절하고 독기 어린 눈빛 속에서 수십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고 장터에 버려져, 살기 위해 남의 떡을 훔치다 장터 왈패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어린 덕배의 모습이 아이 위로 겹쳐졌다.

    '이대로 두면 저 놈은 평생 도둑질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늘 저 매를 맞고 객사할 것이다. 나와 똑같은 진창길을 걷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덕배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몽둥이가 다시 한 번 아이의 머리로 내리쳐지려는 찰나, 덕배가 자신의 지팡이로 그 몽둥이를 막아섰다.

    "이보시오, 주인장. 그쯤 하시게. 아이가 숨통이 끊어지려 하지 않소."

    "뭐야? 넌 또 어서 굴러먹던 뼈다귀야? 당장 비키지 못해!"

    상인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덕배는 품속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던 전대 하나를 꺼냈다. 평생을 소매치기로 살다 은퇴하며 남겨둔, 그의 마지막 비상금이자 목숨줄 같은 돈이었다. 덕배는 엽전 두어 닢을 꺼내 놋숟가락 값과 아이가 망친 자리 값을 치르듯 상인의 발앞에 던졌다.

    "이거면 이 숟가락 값에, 당신 화를 달랠 값으로 충분할 거요. 어린놈이 배가 고파 한 짓이니, 노여움을 거두시오."

    상인은 엽전을 보더니 못 이기는 척 몽둥이를 거두었다. 덕배는 바닥에 쓰러진 아이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고 인파 밖으로 끌고 나왔다. 아이는 짐승처럼 헐떡이며 경계하는 눈초리로 덕배를 노려보았다. 관아로 끌고 가거나, 아니면 자신을 도둑패의 앞잡이로 팔아넘길 늙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왜… 왜 날 구해준 거요? 당신도 날 부려먹으려는 수작이지?"

    아이는 피 묻은 입술을 깨물며 쏘아붙였다. 덕배는 아이의 깡마른 어깨를 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의 그 더러운 손버릇,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솜씨로 훔치려 드니 매를 버는 것이지. 앞장서라. 네놈이 숨어 지내는 굴복이 있을 터. 그리로 가자꾸나."

    아이는 흠칫 놀랐으나, 덕배의 눈빛에 담긴 알 수 없는 온기와 묘한 압도감에 짓눌려 결국 절뚝거리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운종가의 화려한 상점들을 뒤로하고, 한양 도성 뒷골목의 가장 깊고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두 사람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을 음지에서 살아온 늙은 도둑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빛을 쥐여주기 위해 내딛는, 위대하고도 험난한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 2: 훔치는 손에서 쥐는 손으로

    운종가의 화려함 뒤편, 청계천 하류의 썩은 물이 고이는 다리 밑에는 버림받은 자들의 빈민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얼기설기 엮은 짚단으로 바람을 막은 움막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아이가 덕배를 안내한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쓰러져가는 낡은 움막이었다.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칠복아! 너 피투성이가 돼서… 그 할아버지는 누구야?"

    "오라비, 관아에 끌려가는 거야?"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와, 아직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칠복이라 불린 소년의 곁으로 다가와 떨고 있었다. 사내아이는 겁이 많아 보였고, 여자아이는 맹수처럼 덕배를 경계하며 돌멩이를 꽉 쥐고 있었다. 칠복은 동생들을 감싸 안으며 덕배를 향해 날을 세웠다.

    "우린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이 녀석들은 건드리지 마라!"

    덕배는 아이들의 처참한 몰골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한겨울인데도 홑적삼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떨고 있는 아이들. 그 모습이 덕배의 메마른 가슴 한구석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움막 한구석에 놓인 깨진 솥단지를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는 아까 유기전 주인에게 던져주고 남은 엽전으로 국밥 골목에서 사 온 시래기와 식은 밥, 그리고 돼지 뼈다귀를 우려낸 국물을 솥에 붓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하고 기름진 고깃국 냄새가 움막 안을 채웠다. 경계하던 아이들의 뱃속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덕배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덕배가 무뚝뚝하게 턱짓을 했다.

    "먹어라. 뒈지기 싫으면."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이성을 잃고 솥단지로 달려들었다. 뜨거운 국물에 맨손을 집어넣어 고기 부스러기를 건져 먹고, 입천장이 데이는 것도 모른 채 허겁지겁 국밥을 들이마셨다. 덕배는 그저 지팡이에 기댄 채, 짐승처럼 배를 채우는 아이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불쌍한 것들. 어미 아비 없이 이 험한 장터바닥에 던져졌으니, 배를 채울 방법이라곤 남의 것을 슬쩍하는 몹쓸 짓뿐이었겠지.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도 모른 채….'

    아이들이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숨을 내쉴 때쯤, 덕배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덕배다. 오늘부로 내가 너희들의 어미이자 아비 노릇을 할 것이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칠복이 입가에 묻은 국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어미 아비 노릇? 흥, 세상에 공짜 국밥은 없는 법이지. 우리더러 소매치기질을 해서 돈을 상납하라는 거요? 왕초 노릇을 하겠다 이 말이오?"

    덕배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쿵! 하고 세게 내리쳤다. 그 위압감에 아이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똑똑히 들어라. 내 밑에 있는 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짓은 오늘로 끝이다. 소매치기, 도둑질, 거지 노릇… 그딴 짓거리를 하려거든 지금 당장 이 움막에서 나가라. 한 번만 더 남의 주머니를 노리는 꼴을 내 눈에 띄게 한다면, 그 손목아지를 내 손으로 부러뜨릴 것이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인가. 평생 남이 버린 것을 줍거나 훔치는 것밖에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덕배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겁 많은 사내아이인 개똥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그럼 우린 굶어 죽으란 말입니까요? 우린 배운 것도 없고, 힘도 없어서 날품팔이도 못 한단 말입니다요."

    덕배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두꺼운 양손을 아이들 눈앞에 펼쳐 보였다. 온갖 흉터와 굳은살로 뒤덮인, 죄악으로 얼룩진 늙은 소매치기의 손이었다.

    "너희들의 그 작고 빠른 손을 훔치는 데 쓰지 말고, 쥐는 데 쓰거라. 땀 흘려 물건을 만들고, 정당하게 돈을 쥐는 법을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장사를 하라고요? 우리가요? 장터 사람들이 우리 같은 거지 고아들 물건을 사준답니까? 미친 소리!"

    칠복이가 코웃음을 쳤지만, 덕배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사람이 물건을 사는 것은 파는 사람의 옷차림이 번듯해서가 아니다. 물건이 귀하고, 파는 이의 정성이 갸륵하면 지갑은 열리기 마련이다. 내 비록 한평생 도둑놈으로 살았지만, 운종가 장사치들이 어찌 사람을 구슬리고 돈을 모으는지는 곁에서 뼈저리게 보아왔다. 내일 당장 산으로 올라가 볏짚과 칡넝쿨을 베어오너라. 짚신을 삼고 칡바구니를 엮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덕배의 선언은 단호했다. 남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손가락을 놀리던 그 기민함을, 이제는 정교한 수공예품을 만들고 손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상인의 기술로 바꾸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지만, 방금 전 든든하게 채운 국밥의 온기와 처음으로 자신들을 지켜주겠다는 어른의 존재 앞에서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썩은 물이 흐르는 다리 밑 거지 움막에서, 훗날 조선 팔도를 쥐락펴락할 전설적인 상단의 초라하지만 위대한 첫 규칙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 3: 정직한 땀방울의 무게

    며칠 뒤, 동이 트기 전부터 운종가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밤새 산을 타고 내려온 차가운 이슬이 장터 바닥을 적셨지만, 상인들은 일찌감치 나와 난전을 펼치며 하루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 왁자지껄한 소음 한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뜸한 마포나루로 향하는 길목 어귀에 작은 돗자리 하나가 깔렸다.

    돗자리 위에는 조악하지만 제법 모양을 갖춘 짚신 여남은 켤레와 작은 칡바구니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밤낮없이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덕배에게 호되게 매를 맞아가며 아이들이 엮어낸 첫 작품들이었다.

    덕배는 돗자리 뒤쪽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칠복이와 개똥이, 순이는 돗자리 앞에 꿇어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덕배가 헌 옷가지로 대충 기워 만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과 두려움이 역력했다.

    "할배… 아니, 행수 어르신. 진짜 이걸 누가 산단 말입니까? 벌써 반나절이 다 되어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를 거지 보듯 쳐다보기만 하잖아요."

    개똥이가 추위에 덜덜 떨며 코를 훌쩍였다. 장터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어린아이들이 어설픈 수공예품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을 그저 적선이나 바라는 거지들의 새로운 수법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입 다물고 허리 꼿꼿이 펴라. 상인이 손님을 기다리며 주눅이 들어 있으면, 물건의 값어치도 함께 떨어지는 법이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 밑창을 유심히 살펴라."

    덕배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낮고 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남의 주머니 사정을 살피던 도둑의 눈썰미를, 이제는 손님의 필요를 간파하는 상인의 눈썰미로 바꾸는 훈련이었다.

    그때,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뚱뚱한 양반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그들 앞을 지나갔다. 양반의 뒤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인 하인들이 줄지어 따르고 있었다. 칠복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번쩍였다. 양반의 허리춤에 느슨하게 매달린 큼지막한 비단 전대가 보였던 것이다. 전대 안에는 묵직한 상평통보가 가득 찬 듯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거다! 저거 하나만 슬쩍하면 한 달 치 국밥은 거뜬한데…!'

    칠복의 오랜 버릇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려는 찰나였다.

    탁!

    등 뒤에서 날아온 덕배의 지팡이가 칠복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어딜 보는 게냐. 내가 양반의 주머니를 보라 했더냐, 신발 밑창을 보라 했더냐!"

    칠복은 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양반을 뒤따르던 하인 하나가 무거운 짐을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다 짚신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간신히 중심을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인은 끊어진 짚신을 질질 끌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덕배가 칠복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가거라! 네놈이 밤새 손가락에서 피를 내가며 엮은 그 짚신을 들고, 가서 말을 붙여라!"

    칠복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돗자리에서 가장 튼튼하게 짜인 짚신 한 켤레를 집어 들고 하인에게 달려갔다.

    "여… 영감님! 아니, 아재요! 신발 끈이 끊어지셨구만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이대로 장터 길을 걷다간 발바닥이 다 까져버릴 겝니다!"

    하인은 짜증 섞인 얼굴로 칠복을 굽어보았다.

    "비켜라, 이놈아! 안 그래도 뒤처져서 나리께 벼락을 맞을 판인데, 어디서 거지 놈이 귀찮게 굴어!"

    "거지가 아닙니다요! 저잣거리에서 제일 질기고 튼튼한 짚신을 파는 상인입니다! 한 번 만져보시지예. 제가 직접 산에서 가장 질긴 칡넝쿨을 섞어 꼬아 만든 것이라, 마포나루까지 열 번을 왕복해도 끄떡없습니다요!"

    칠복은 평소 장터 왈패들에게 맞으며 다져진 깡다구로, 짚신을 하인의 발아래 들이밀었다. 무거운 짐 때문에 발이 아파 고생하던 하인은 칠복이 내민 짚신을 흘긋 보았다. 아이가 만든 것치고는 제법 짜임새가 촘촘하고 단단해 보였다.

    "에잉, 쯧! 그래, 얼마냐? 어서 내놓아라!"

    하인은 품에서 엽전 두 닢을 꺼내 칠복에게 던지듯 주곤 짚신을 갈아 신었다. 엽전이 바닥에 쨍그랑 떨어지는 순간, 칠복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남의 주머니에서 몰래 빼낸 돈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속여서 얻어낸 돈도 아니었다. 자신의 부르튼 손으로 직접 만들고, 정당하게 흥정하여 얻어낸 '진짜 돈'이었다.

    "고맙습니다요! 먼 길 조심히 가십쇼!"

    칠복은 바닥에 떨어진 엽전을 두 손으로 소중히 주워 담으며 허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돗자리로 돌아온 칠복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동생들 역시 칠복의 손에 들린 엽전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덕배는 여전히 담벼락에 기댄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정직한 땀방울의 무게다. 남의 눈치를 보며 벌벌 떨 필요도 없고, 포졸들에게 쫓겨 다리를 절 일도 없는, 온전한 네놈의 돈이란 말이다."

    그날 저녁, 낡은 움막 안에는 다시 국밥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며칠 전 덕배가 던져준 적선으로 먹던 국밥과는 달랐다. 아이들이 직접 번 엽전 두 닢으로 당당하게 사 온 국밥이었다. 고기 한 점 없는 멀건 시래기국이었지만, 아이들은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달게 국밥을 들이켰다. 덕배는 코를 훌쩍이며 국밥을 먹는 아이들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 아이들의 정직한 땀방울이 조선 팔도 전체를 적시는 커다란 강물이 될 때까지, 자신의 남은 생을 모두 바쳐 그들을 훌륭한 거상으로 길러내겠노라고.

    ※ 4: 거상의 횡포와 유혹

    세월이 흘러 운종가의 풍경도 여러 번의 계절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다. 청계천 다리 밑 거지 움막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조촐한 봇짐장사는 어느덧 운종가 길목 한구석에 어엿한 난전을 차릴 만큼 눈부시게 성장해 있었다. 처음에는 손끝이 서툴러 모양새가 엉성했던 짚신과 칡바구니들도, 이제는 장터에서 가장 질기고 실용적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장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거지 떼라 부르며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대신 작지만 옹골차게 장사를 해내는 그들을 ‘청계 꼬마상단’이라 부르며 은근한 기특함을 표하곤 했다.

    가장 맏형 격인 칠복이는 어느새 어깨가 떡 벌어지고 목소리가 굵어진 청년의 티를 내기 시작했고, 매사에 겁을 먹던 개똥이와 사람을 경계하던 순이도 장터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웃으며 흥정을 벌일 만큼 넉살이 좋아졌다. 덕배는 묵묵히 난전 뒤편에 앉아 파손된 물건을 손보거나 아이들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이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맑은 날이 계속되면 반드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장터 바닥의 매서운 생리였다. 아이들의 장사가 제법 쏠쏠하게 이문을 남기며 자리를 잡아가자, 운종가 상권을 꽉 쥐고 있던 비단 상단의 대행수, 최 객주가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최 객주는 돈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사내였다. 그는 주변의 영세한 상인들이 조금이라도 이문을 낼 기미가 보이면 왈패들을 동원해 헐값에 상권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려 온 거상이었다. 비단옷을 겹겹이 걸치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 배가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그는, 운종가의 모든 돈이 자신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었다. 어느 늦은 오후, 장터에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파장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최 객주가 험악한 인상의 건장한 왈패 십여 명을 이끌고 칠복이네 난전 앞을 험악하게 가로막아 섰다. 최고급 비단옷을 걸친 최 객주의 입가에는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교활하고 비릿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어린놈들이 다리 밑에서 굴러먹다 나와 제법 재주가 용하구나. 짚신 몇 켤레 팔아 연명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제법 상단 흉내를 내며 이 운종가 바닥의 물을 흐리고 있다지? 내 허락도 없이 이리 버젓이 장판을 벌이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인 줄 모르느냐?"

    위협적인 왈패들의 기세와 최 객주의 서슬 퍼런 호통에 개똥이와 순이는 겁을 먹고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장터 바닥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맷집을 키워온 칠복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장터의 법도에 따라 자릿세를 꼬박꼬박 내고 정당하게 땀 흘려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요, 객주 어르신. 저희가 파는 물건이 어르신의 귀한 비단 장사와 겹치는 것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이리 험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최 객주는 칠복의 당돌한 대답에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난전 바닥에 툭 던졌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바닥에 뒹군 것은,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육중한 은괴 두어 개였다. 평생을 가도 만져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액수의 큰돈이었다. 은괴가 뿜어내는 매혹적인 광채에 아이들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휘둥그레졌다.

    "내 너희들의 영특함과 담력을 높이 사서 제안을 하나 하마. 내가 뒷조사를 좀 해보니, 너희들이 예전에 이 운종가 바닥에서 남의 주머니를 털던 솜씨가 아주 기가 막혔다 들었다. 내일 밤, 건너편 포목점 박 행수의 창고에 잠입하여 명나라에서 들여온 비단 장부 하나만 감쪽같이 훔쳐 내오너라. 박 행수 그놈이 요새 내 밥그릇을 넘보고 있어서 기를 꺾어놔야겠거든. 그리만 해준다면 이 은괴는 물론이고, 내 상단 밑에 번듯한 점포 하나를 내주마. 어떠냐? 이깟 짚신이나 팔며 찬바닥에서 평생을 썩느니, 내 밑에서 큰돈을 만져보는 것이 훨씬 현명하지 않겠느냐?"

    칠복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며 바닥에 떨어진 은괴에 고정되었다. 과거, 배고픔에 시달리며 남의 주머니를 노리던 그 서글프고 지독했던 시절의 버릇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 장부 하나만 눈감고 슬쩍해 오면, 겨울마다 손발이 얼어붙는 다리 밑 움막 생활을 완전히 청산할 수 있었다.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동생들에게 매일 고기 반찬을 먹일 수 있는 것이다. 담을 넘고 자물쇠를 푸는 손재주라면 아직도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칠복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손을 뻗어 바닥의 은괴를 집어 들려는 찰나였다.

    탁!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온 낡은 지팡이가 칠복의 손등을 매섭고 단호하게 후려쳤다.

    "아얏!"

    칠복이 짧은 비명과 함께 물러서자, 어둠이 짙게 깔린 담벼락 뒤에서 덕배가 굽은 등을 이끌고 절뚝이며 걸어 나왔다. 덕배의 깊게 파인 두 눈은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은괴를 발로 거칠게 걷어차 최 객주의 발밑으로 돌려보냈다.

    "썩은 고기 덩어리로 주린 개를 유혹할 수는 있어도, 드넓은 하늘을 나는 매를 길들일 수는 없는 법이오. 이 아이들은 더 이상 쥐새끼처럼 남의 것을 탐하는 도둑놈들이 아니오. 비록 짚신을 팔지언정, 당당하게 땀 흘려 정직하게 살아가는 운종가의 상인들이란 말이오!"

    최 객주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코웃음을 치고 덕배를 비아냥거렸다.

    "흥, 한물간 은퇴한 늙은 소매치기 주제에 어디서 제법 성인군자 흉내를 내는군. 뒷골목 쥐새끼는 평생 쥐새끼일 뿐이다. 두고 보자. 이 운종가에서 내 제안을 거절하고 내 눈밖에 나고도 과연 무사히 장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

    최 객주가 왈패들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 적막이 감도는 난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칠복은 원망과 서러움이 뒤섞인 눈으로 덕배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왜… 왜 그러셨습니까! 그깟 장부 하나 슬쩍 훔쳐다 주는 게 뭐 대수라고요! 저 큰돈이면 우리도 남들처럼 눈치 안 보고 번듯한 상전에서 장사할 수 있단 말입니다! 언제까지 이 찬바닥에서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짚신이나 팔며 괄시를 받아야 합니까!"

    덕배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던지고 칠복의 멱살을 꽉 움켜쥐어 자신의 눈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칠복은 덕배의 눈빛에 담긴, 평생을 후회와 회한 속에서 살아온 자만이 낼 수 있는 깊은 슬픔을 마주하고 흠칫 몸을 떨었다.

    "이 어리석은 놈아! 내 평생을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으며 살아왔다.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도 훔쳐보았고, 남부럽지 않은 돈을 쥐어본 적도 있지. 허나, 그 훔친 돈으로 단 하루라도 두 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잠든 적이 있는 줄 아느냐? 포교의 발소리에 밤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했고, 사람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훔친 돈은 손아귀에 쥔 모래알과도 같아서, 결국 네 놈의 피와 살을 갉아먹고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는 법이다!"

    덕배는 칠복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목이 멘 소리로 절절하게 말을 이었다.

    "상인의 진짜 재산은 번쩍이는 은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신용'이다. 한 번 도둑질로 얻은 돈은 천금이라도 하루아침에 바람처럼 날아가지만, 정직과 땀방울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신용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널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성벽이 될 것이다. 네놈이 정녕 그 천박하고 가련한 도둑놈의 굴레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면, 당장 이 움막을 떠나 그 자객 같은 객주 놈에게로 가거라!"

    그 단호하고 뼈저린 호통에 칠복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편하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얄팍한 유혹에 흔들렸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뒤에서 지켜보던 개똥이와 순이도 다가와 칠복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그날 밤, 거지 움막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은괴가 주었던 헛된 환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볏짚을 꼬아 짚신을 엮고 칡넝쿨을 엮어 바구니를 짜며, 정직하게 흘리는 땀방울의 고귀한 의미를 다시금 가슴 깊은 곳에 뼈저리게 새겨 넣었다. 덕배의 거칠지만 진심 어린 가르침은 그 어떤 화려한 금은보화보다도 더 깊고 단단하게, 장차 거상이 될 아이들의 영혼을 올곧게 담금질하고 있었다.

    ※ 5: 소매치기의 눈썰미

    그로부터 며칠 뒤, 평화롭던 운종가 장터에 커다란 소란과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청국에서 온 거물급 상인들이 대규모로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을 매입하기 위해 한양 도성에 발을 들였는데, 이들의 막대한 은자와 짐수레를 통째로 노리는 팔도의 악명 높은 전문 털이범들이 장터 곳곳에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관아에서는 비상을 걸고 포졸들을 쫙 깔아 순찰을 강화했지만,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과 짐이 오가는 복잡한 운종가 바닥에서 신출귀몰한 도둑들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넓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무망한 일이었다. 영세한 상인들부터 커다란 전포를 운영하는 객주들까지, 행여나 자신의 피 같은 물건을 도둑맞을까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설치고 장사에 도무지 집중하지 못했다.

    이 혼란 속에서 가장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며칠 전 칠복 일행을 돈으로 유혹하려 했던 최 객주였다. 그는 이번 청국 상인들과의 독점 거래를 성사시켜 막대한 부를 거머쥐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은 물론이고 주변 상단들의 돈까지 무리하게 끌어모아 최고급 조선 인삼을 싹쓸이하여 자신의 거대한 창고에 가득 쌓아두고 있었다. 만약 그 인삼 창고를 도둑맞는다면 최 객주 개인의 파멸은 물론이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수많은 운종가 상인들까지 줄도산의 위기에 처하게 될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날 한낮, 시장 한가운데서 덕배와 아이들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느 때처럼 난전을 펴놓고 묵묵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과거 덕배의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단련된 아이들의 눈빛은 달랐다. 남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눈치를 살피던 탐욕스러운 도둑의 눈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세한 발걸음, 옷차림의 부조화, 시선의 방향을 단숨에 읽어내는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진화해 있었다.

    한참 손님과 흥정을 벌이던 칠복의 시선이 어느 순간, 장터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날카롭게 꽂혔다. 그들은 평범하고 남루한 등짐장수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평생을 뒷골목에서 구른 칠복의 훈련된 눈에는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훤히 꿰뚫어 보였다.

    '발걸음이 이상하다. 등에 진 봇짐이 저리 크고 무거워 보이는데, 걷는 품새가 고양이처럼 사뿐하고 소리가 없어. 게다가 저놈들의 시선은 좌판의 물건이나 상인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상점들의 뒷문 구조, 담벼락의 높이, 그리고 경비를 서는 왈패들의 숫자를 교묘하게 훑고 있잖아. 저건 백발백중이다.'

    칠복은 어릴 적 소매치기 시절, 표적을 물색하고 퇴로를 미리 확보하던 자신의 과거 모습과 그들의 은밀한 움직임이 완벽하게 겹쳐 보였다. 사내들은 마치 잘 짜인 군대처럼 약속이나 한 듯 흩어지더니, 거대한 자물쇠가 채워진 최 객주의 인삼 창고 주변으로 스며들듯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 밤, 방심한 틈을 타 최 객주의 인삼 창고를 통째로 털기 위한 사전 답사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칠복은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급히 덕배의 곁으로 다가가 주위를 살피고 귓속말을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덕배의 흐릿했던 눈빛이 순식간에 젊은 시절의 '귀신 손'처럼 매섭고 날카롭게 번뜩였다.

    "네놈의 짐작이 확실하냐? 어설픈 심증으로 관아에 고변을 했다간 오히려 무고죄로 우리가 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

    "제 목숨을 걸고 틀림없습니다요, 대행수 어르신. 제가 옛날에 쓰던 수법, 숨 쉬는 타이밍까지 똑같습니다. 저놈들, 옷 속에 분명히 비수를 품고 있습니다. 오늘 밤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자정이 되면 무조건 최 객주의 창고 담을 넘을 겁니다."

    순간, 칠복과 동생들의 머릿속에 묘한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 자신들에게 도둑질을 사주하며 모욕을 주었던 최 객주였다. 그가 파멸하는 것은 통쾌한 복수극이 될 터였다. 개똥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형님, 어르신. 그냥 모른 척 눈감아 버리시지요. 우리에게 억지를 부리고 도둑질까지 시키려던 몹쓸 인간 아닙니까? 저놈이 망해야 우리가 장사하기 편해질 겁니다요."

    하지만 덕배는 지팡이로 개똥이의 다리를 툭 치며 단호하고 엄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은 소리! 상인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더라도 장터 안에서는 대의와 상도덕으로 뭉쳐야 하는 법이다. 최 객주의 인삼이 털려 그가 무너지면, 그에게 돈을 댄 운종가의 수많은 무고한 상인들이 함께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장터의 신용이 무너지면 결국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의 밥줄까지 끊기는 것이다. 네놈들의 그 예리하게 벼려진 눈썰미를, 오늘은 도둑질이 아니라 이 장터를 지키는 훌륭한 방패로 써보거라!"

    그날 자정,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와 달빛마저 집어삼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되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최 객주의 거대한 인삼 창고 뒷담을 고양이처럼 가볍게 넘는 검은 복면의 그림자들이 있었다. 낮에 칠복이 점찍어둔 그 팔도의 전문 털이범들이었다. 그들이 기름을 칠한 기구로 능숙하게 굵은 자물쇠를 따고 창고 안으로 은밀하게 스며드는 찰나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수십 개의 눈부신 횃불이 일제히 타오르며 대낮처럼 환하게 어둠을 갈랐다.

    "이놈들! 독안에 든 쥐새끼들, 꼼짝 마라!"

    칠복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숨죽여 매복해 있던 관아의 포졸들과 최 객주의 건장한 왈패들이 일제히 창고 사방을 에워싸며 덮쳤다. 덕배와 칠복의 정확하고 치밀한 사전 고변을 받고 미리 물샐틈없는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털이범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미리 봐두었던 뒷골목 퇴로를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소매치기들의 도주로와 심리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칠복과 개똥이가, 이미 무거운 짐수레와 밧줄을 겹겹이 쌓아 올려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독안에 갇힌 털이범들은 결국 인삼 뿌리 하나 건드려보지 못한 채, 저항을 포기하고 줄줄이 포승줄에 굴비 엮이듯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잠옷 바람으로 허겁지겁 달려온 최 객주는 털썩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태가 수습되고 정신을 차린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횃불 아래에는 낡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덕배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서 있는 칠복 일행이 조용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 객주의 얼굴이 수치심과 고마움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불과 며칠 전 자신이 하찮은 은괴 몇 개로 매수하려 했던, 천박하다며 침을 뱉었던 다리 밑 고아들과 늙은 소매치기가, 자신의 전 재산과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거만했던 최 객주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 덕배와 아이들 앞에 엎드리듯 깊이 허리를 숙였다.

    "내… 내가 참으로 어리석고 눈이 멀었었소. 알량한 금은보화로 너희들의 손재주를 사려 했건만, 너희들이 가진 진짜 위대한 무기는 정직함과 이 장터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었음을 천하의 바보인 내가 이제야 깨달았소. 진심으로… 뼛속 깊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고맙소."

    운종가 최고의 거상으로 군림하던 콧대 높은 남자가, 길바닥 난전의 꼬마 상인들과 늙은 노인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다음 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장터 전체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장터 사람들은 청계 꼬마상단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남의 주머니를 털던 기민한 눈썰미가 상단의 막대한 재산을 지키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었고, 은괴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의 정직함은 그 어떤 보증서보다 더 단단한 신용이 되어 운종가 모든 상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이제 장터의 가장 후미진 후미진 구석이 아니라, 사람들의 뜨거운 존경과 절대적인 신뢰가 집중되는 양지의 한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 6: 대행수로 맞이하는 눈부신 황혼

    그 숨 가빴던 사건으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이제 한양 도성 운종가의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운종가 한복판,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최고의 명당자리에 으리으리하고 장엄한 2층짜리 기와집 대형 상전이 새로 들어섰다. 웅장한 가게 입구에는 질 좋은 옻칠을 한 거대한 현판 위에 '청계상단(淸溪商團)'이라는 네 글자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은 청계상단의 본점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수백 명의 상인들과 축하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넓은 운종가 거리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거대한 상전의 넓디넓은 대청마루 한가운데, 최고급 명주 비단 방석 위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깊게 팬 한 노인이 평안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좌정해 있었다. 뼈마디가 굵어지고 툭하면 덜덜 떨리는 늙은 손. 한때 운종가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남의 주머니를 털며 목숨을 연명하던 전설의 소매치기, 덕배였다. 하지만 지금 그 거대한 군중 속에서 그를 소매치기나 도둑놈이라 부르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장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운종가의 살아있는 성자', 혹은 '조선 제일 청계상단의 위대한 대행수 어르신'이라 부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염을 바치고 있었다.

    덕배의 곁에는 듬직한 체구에 위풍당당한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가 예를 갖추어 서 있었다. 과거 다리 밑 거지 움막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매를 맞던 소년, 칠복이었다. 이제는 명실상부 조선 제일의 거상이 된 칠복은, 마루 아래를 가득 메운 군중들을 향해 묵직하고도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존경하는 운종가 동료 상인 여러분! 오늘 우리 청계상단이 이 운종가 한복판에 이렇게 크고 웅장한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저의 재주가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여기 계신 위대한 대행수 어르신의 뼈를 깎는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과거 남의 것을 탐하며 시궁창을 뒹굴던 저희들의 더러운 손을 손수 씻겨 주시고, 정직하게 흘린 땀방울만이 진정한 재물과 사람의 마음을 불러온다는 '상인의 참된 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번 잃은 신용은 천금으로도 살 수 없다는 그 숭고한 가르침이 오늘의 청계상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과 감사를, 저희들의 진정한 아버지이신 덕배 대행수 어르신께 바칩니다!"

    칠복의 진심 어린 연설이 끝나자, 마루 아래에 도열해 있던 늠름한 자태의 개똥이와 어엿한 안주인이 된 순이, 그리고 청계상단 소속의 수백 명 점원들이 일제히 덕배를 향해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장터를 구경하던 수많은 백성들과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도 천둥 같은 우렁찬 박수갈채와 감동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덕배는 노환으로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환호하며 자신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벅찬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평생 뒷골목을 전전하며 포졸들에게 쫓기고 상인들에게 몽둥이질을 당하던, 팍팍하고 서글픈 인생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언제나 축축하고 차가운 음지로만 숨어들어야 했던 그가, 생의 마지막 황혼에 이르러서야 이토록 눈부시고 따뜻한 양지 한가운데 앉아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어린 박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시여,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한평생 죄를 짓고 살았던 이 늙고 추악한 도둑놈의 텅 빈 손에, 이리도 귀하고 찬란한 보물들을 마지막에 한가득 쥐여 주시다니요.'

    덕배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신의 거칠고 투박한 두 손을 들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젊은 날, 남의 비단 전대를 훔치느라 귀신같이 재빠르게 움직였던 그 날렵했던 손은 이제 관절이 굳어 뭉툭해지고 검버섯이 피어 흉하게 주름져 있었다. 하지만 덕배는 생전 처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이 늙은 손이 눈물겹게 자랑스러웠다. 이 손으로 굶주려 죽어가던 아이들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 주었고, 이 손으로 그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주었으며, 이 손으로 부르트도록 짚신을 엮어 아이들에게 '정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칠복이 다가가 덕배의 덜덜 떨리는 거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칠복의 손은 예전의 그 깡마르고 날카롭던 소매치기의 손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정직한 땀방울이 밴 물건을 어루만져 온, 따뜻하고 두툼한 거상의 손이었다.

    "아버지, 이제 무거운 짐은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쉬십시오. 아버지가 제게 물려주신 이 정직한 장사치의 올곧은 도리, 저희가 죽는 날까지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 널리 퍼뜨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살리셨고, 이 장터를 살리셨습니다."

    덕배는 칠복의 굳은살 박인 따뜻한 손을 마주 잡으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서 맺힌 맑은 눈물 한 방울이 깊은 주름을 타고 뺨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과거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회한의 눈물이 아니라, 삶의 모든 상처와 과오를 말끔히 씻어내는 평화롭고 한없이 따뜻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때마침, 운종가 한복판에 자리한 보신각의 웅장한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도성 전체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남의 것을 훔치는 비참한 삶에서 남에게 베푸는 고귀한 삶으로,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장터 사람들이 가장 우러러보는 존경받는 대행수로 기적처럼 거듭난 덕배의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이, 그 묵직한 종소리를 타고 한양 도성의 티 없이 맑은 푸른 하늘 위로 끝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 장터의 그림자를 떠돌던 한 늙은 남자가 정직이라는 씨앗을 심어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눈부신 장터 인생 야담의 완벽하고도 숭고한 결말이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평생 음지에서 살아온 소매치기 덕배가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은 금은보화가 아닌 '정직'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내 안의 가장 따뜻한 빛을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응원의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정감 넘치는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웃음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