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를 사랑한 대감의 결단 [기문총화]
노비를 사랑한 대감의 결단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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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조선 시대, 사대부 양반과 천한 노비의 사랑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끔찍한 금기였습니다. 깐깐하고 대쪽 같기로 소문난 대감이 하찮은 몸종의 매력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주변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전 재산을 걸고 노비 문서를 불태운, 어느 사내의 은밀하고도 뜨거운 순정. 뼛속까지 파고드는 아찔한 연모의 정, 그 밤의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1: 얼음장 같은 대감의 마음에 스며든 봄바람
조선 팔도의 중심부, 한양 도성 내에서도 그 깐깐함과 대쪽 같은 성정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 대감의 으리으리한 저택. 높게 솟은 솟을대문과 겹겹이 둘러쳐진 담장 너머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조차도, 이 집안의 숨 막히도록 엄격한 가풍 앞에서는 기가 죽어 숨을 죽이는 듯했습니다. 최 대감은 일찍이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첫 부인을 병으로 여의고, 그 후 십수 년이라는 길고 외로운 세월을 홀로 지내며 오로지 성리학의 깊은 도와 가문의 드높은 명예만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온 철저하고 완고한 사대부였습니다. 첩실을 들이라는 문중 어르신들의 숱한 권유도 단칼에 거절한 채, 그의 서재는 언제나 차가운 묵향과 한겨울 얼음장 같은 서늘한 기운만이 무겁게 맴돌았습니다. 하인들은 대청마루에서 들려오는 그의 헛기침 소리 한 번에도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츠렸고, 행여나 발소리라도 크게 낼까 봐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여색을 돌처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과 금욕적인 삶만을 고집하는 그를 두고, 세간의 사람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피도 눈물도 없는 목석같은 사내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던 최 대감의 빙벽 같은 이성에, 어느 날부터인가 한 줄기 치명적이고도 달콤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거부할 수 없는 균열의 시작은, 대감의 아침저녁 탕약을 달이고 서재의 자잘한 시중을 전담하게 된 스무 살 무렵의 앳된 몸종, 월아였습니다. 월아는 흉년이 들었던 해에 부모를 여의고 빚에 팔려 이 댁으로 들어온 비루한 천출이었으나, 그녀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여느 거칠고 투박한 하녀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눈처럼 희고 고운 살결과, 깊은 호수를 담은 듯 우수에 젖은 크고 맑은 눈망울, 그리고 낡은 무명 치마 아래로 언뜻언뜻 비치는 가늘고 선이 고운 자태는 뭇 사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뇌쇄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불쌍한 어린종이라 여겼던 최 대감이었지만, 그녀가 서재를 드나들며 풍기는 은은한 비누향과 처녀 특유의 짙은 체향은 점차 그의 서늘했던 공간을 빈틈없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마당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서재 안에는 호롱불만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맹자 책을 펼쳐 든 최 대감의 시선은 분명히 먹물로 쓰인 글귀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의 온 신경과 감각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치맛자락 소리에 곤두서 있었습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왔습니다. 이내 조심스러운 기척과 함께 창호지 문이 스르르 열리고, 소박한 다과상을 든 월아가 방 안으로 사뿐히 들어섰습니다.
"대감마님, 밤공기가 제법 차옵니다. 밤새 글을 읽으시느라 옥체 상하실까 염려되어, 따뜻한 대추차를 달여 내왔사오니 목을 축이시옵소서."
월아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은쟁반 위를 구르듯 청아하고 맑았지만, 동시에 사내의 단전 저 깊은 곳을 기분 좋게 긁어내리는 묘한 떨림과 색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찻상을 내려놓기 위해 그녀가 조심스레 허리를 굽히는 순간, 낡고 얇은 무명 저고리 깃 사이로 희고 매끄러운 목덜미와 깊게 파인 쇄골의 아찔한 곡선이 최 대감의 시야로 훅 하고 밀려들어 왔습니다. 차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한 대추 향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숙한 여인의 뜨거운 냄새가 차가운 묵향을 단숨에 밀어내고 대감의 코끝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최 대감은 짐짓 헛기침을 크게 하며 시선을 거두려 애썼으나, 뱃속에서부터 뜨겁게 끓어오르는 원초적인 욕망과 제멋대로 요동치는 거센 심장 소리가 행여나 이 작은 여인에게 들릴까 두려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월아는 숱이 많은 까만 흑단 같은 머리채를 단정히 빗어 넘겼으나, 부엌에서 불을 때며 흘린 땀방울 탓인지 뺨으로 흘러내린 잔머리 몇 가닥이 하얀 이마에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그 흐트러진 모습은 오히려 앳되고 청초한 얼굴 이면에 숨겨진 성숙한 여인의 짙은 관능미를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최 대감을 미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체 내 정신이 어찌 된 것인가. 내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사서삼경을 통달하며 평생을 군자의 도를 닦았거늘! 어찌 저런 천한 핏줄의 새파랗게 어린것에게 이토록 추잡하고 발정 난 짐승 같은 욕정을 품는단 말인가. 나의 수양이 고작 계집의 얇은 치맛자락 하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만큼 얄팍하고 가벼웠던가!'
최 대감은 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자신을 뼈아프게 질책하고 매서운 채찍질을 가했지만, 차갑게 벼려왔던 이성은 이미 사내의 본능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서서히, 그리고 완벽하게 잠식당하고 있었습니다. 월아가 찻잔을 따르기 위해 뻗은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과 붉은 입술을 볼 때면, 당장이라도 그 얇은 손목을 낚아채어 자신의 뜨거운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기고 싶은 맹렬한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치밀어 올랐습니다.
"상이 들어왔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내 오늘은 피곤하여 더는 시중이 필요 없다."
최 대감의 목소리는 평소의 맑고 위엄 있는 소리가 아니라,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몹시 낮고 쉰 소리가 났습니다. 애써 시선을 책으로 억지로 고정한 채 뱉어낸 무심하고도 차가운 축객령이었지만, 월아는 평소처럼 '예' 하고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찻상을 밀어두고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최 대감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듯한 월아의 맑고 큰 두 눈동자가 일렁이는 호롱불 빛을 받아 별빛처럼 반짝였습니다.
"대감마님... 며칠째 밤잠을 설치시고 식사도 통 못 하시는 듯하옵니다. 낮에도 서재에서 한숨을 푹푹 쉬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옥체 상하실까 소녀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프옵니다. 혹여 불편하신 곳이 있으시다면, 아니면 마음의 시름이라도 있으시다면 부족한 소녀가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겠사옵니다. 부디 소녀의 이 작은 정성을 내치지 마시옵소서."
그 순간, 최 대감의 이성을 위태롭게 팽팽히 당기고 있던 마지막 끈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며 귓가를 강타하는 듯했습니다. 주인을 걱정하는 가득 담긴 그녀의 말은 틀림없는 순수한 충심이었으나, 흔들리는 불빛 아래 살짝 벌어진 붉고 도톰한 입술과 상기된 두 뺨은 굶주린 사내의 깊은 욕망을 거침없이 자극하는 치명적인 독약과도 같았습니다. 월아는 대감의 침묵을 허락으로 여긴 듯, 무릎을 꿇은 채 조심스레 다가와 단단하게 굳어있는 최 대감의 넓은 어깨 위로 조심스럽게 두 손을 얹었습니다.
얇은 비단옷 너머로 전해지는 여인의 보드랍고 뜨거운 체온. 그 작고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의 뭉친 근육을 꾹꾹 눌러올 때마다, 최 대감의 온몸은 벼락에 맞은 듯 찌릿찌릿 감전되며 미세하게 떨려왔습니다. 방 안에는 거세게 요동치는 사내의 심장 박동 소리와, 두 남녀의 엇갈리고 엉키는 무거운 숨소리만이 짙고 끈적하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최 대감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가 부러져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갸녀린 손가락이 어깨를 타고 내려와 민감한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는 순간, 그는 십수 년간 쌓아온 모든 이성의 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를 수도, 억누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거친 야수의 숨을 훅 내뱉으며, 최 대감은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던 월아의 가녀린 손목을 뒤로 돌아 덥석 움켜쥐었습니다.
※ 2: 이성을 무너뜨린 은밀하고도 뜨거운 밤
갑작스럽고도 억센 최 대감의 거친 손길에 월아는 화들짝 놀라며 짐승에게 덜미를 잡힌 작은 새처럼 가느다란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앗... 대, 대감마님... 갑자기 어찌 이러시옵니까..."
월아의 눈동자가 당혹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묘한 떨림으로 커다랗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최 대감은 악력으로 꽉 움켜쥔 그녀의 손목을 절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작은 손을 강하게 끌어당겨 펄펄 끓어오르는 자신의 뜨거운 뺨에 억지로 가져다 대었습니다. 늘 얼음장처럼 차갑고 엄격하기만 하던 대감의 두 눈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도 같은 사내의 짙고 노골적인 갈망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월아야... 네가 진정 나를 미치게 할 작정이냐. 매일 밤 널 내 곁에 눕히고 짐승처럼 네 부드러운 살결을 탐하며 뒹구는 몹쓸 상상에 시달려, 내 속이 까맣게 숯덩이처럼 타들어 가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나를 어찌 이리 지독한 지옥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이냐."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뱉어낸 최 대감의 절절한 고백은, 고고한 양반의 체면도, 엄격한 가문의 법도도 모두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린 원초적인 수컷의 갈구 그 자체였습니다. 월아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늘과도 같은, 감히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지엄한 주인의 입에서 나온 그 파격적이고 낯 뜨거운 말들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가 이내 뜨겁게 끓어오르며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목을 쥔 대감의 거친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멀리서 우러러보며 남몰래 남자로 흠모해왔던 주인이었습니다. 그 넓지만 늘 외롭고 차가워 보였던 뒷모습을 보며 남몰래 가슴 아파했던 월아였기에, 지금 오직 자신만을 갈구하며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이 고고한 사내의 뜨거운 눈빛과 애원 앞에 온몸이 촛농처럼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최 대감은 덜덜 떠는 월아의 얇은 허리를 단단하고 굵은 팔로 감싸 안아, 단숨에 방바닥에서 들어 올려 자신의 탄탄한 무릎 위로 마주 보게 끌어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몸이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자, 숨이 막힐 듯한 짙은 열기와 아찔한 체향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대감마님... 이러,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소녀는 길바닥의 먼지보다 못한 천한 짐승 같은 몸종이옵고, 마님은 하늘이 내리신 고귀한 사대부이시옵니다.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마님의 높으신 명예에 씻을 수 없는 큰 누를 끼치게 되옵니다. 제발... 제발 이성을 찾으시고 소녀를 놓아주시옵소서..."
월아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 대감의 떡 벌어진 넓은 가슴을 작은 두 손으로 밀어내며 눈물을 글썽인 채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쾌락과 두려움이 뒤섞여 흠뻑 젖어 있었고, 밀어내는 손길에는 사내를 밀어낼 아무런 힘조차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을 비틀며 닿아오는 그녀의 부드러운 곡선과 붉어진 눈시울, 촉촉하게 침이 고인 입술은 묘하고도 농염한 색기를 뿜어내며 대감의 남은 이성마저 맹렬하게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명예? 양반의 빌어먹을 법도? 네가 지금 내 품에 안겨 이리도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데, 그따위 허울뿐인 껍데기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내 널 안지 못해 피가 거꾸로 솟고 숨통이 콱콱 막혀 당장 미쳐 죽을 것만 같은데! 내 십수 년을 감정도 피도 없는 죽은 나무토막처럼 살아왔으나, 널 본 순간 내 깊은 곳에 갇혀있던 짐승이 깨어나 버렸다. 오늘 밤, 널 온전히 내 여인으로 내 밑에 품지 못한다면 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이다."
최 대감의 굵고 거친 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월아의 저고리 옷고름으로 짐승처럼 거칠게 향했습니다. 스르륵, 얇은 무명 고름이 힘없이 풀려나가는 소리는 고요한 밤의 적막을 찢는 치명적이고도 아찔한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월아는 파르르 떨며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이 사내에게 맡기듯 긴 숨을 토해냈습니다. 거침없고 탐욕스러운 사내의 손길이 저고리를 벗겨내고 치마끈을 풀어헤치자, 달빛을 고스란히 머금은 듯 눈부시게 하얀 속살과 가파른 가슴선이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은밀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랜 세월 무예와 학문으로 다져진 최 대감의 크고 투박한 굳은살 박인 손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와 매끄러운 등선을 애틋하면서도 집요하게 쓸어내렸습니다. 거친 굳은살이 연약한 맨살에 닿을 때마다 월아의 입술 사이로는 쾌감을 참지 못하는 억눌린 교성이 끈적하고 달콤한 한숨처럼 끊임없이 새어 나왔습니다. 최 대감은 짐짓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월아의 가녀린 목덜미와 깊게 파인 쇄골에 불덩이 같은 입술을 깊게 묻었습니다. 그의 뜨거운 혀와 입술이 닿는 곳마다 붉은 꽃잎이 피어나듯 선명한 정사의 자국이 새겨졌습니다.
무릎 위에서 시작된 탐닉은 이내 서재 바닥에 깔린 두꺼운 비단 요 위로 옮겨갔고, 두 사람의 몸은 무겁고도 뜨겁게 얽혀 들었습니다.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던 호롱불이 두 사람의 거친 움직임에 일어난 바람에 훅 하고 꺼지며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오직 창호지 틈으로 스며든 창백하고도 관능적인 달빛만이, 땀에 흠뻑 젖어 하나로 엉켜 붙은 두 육체의 굴곡을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이어진 짐승 같은 거친 갈구와, 그 거친 파도 속에서 피어난 애틋하고 절절한 연정. 이성을 완벽히 상실하고 덤벼드는 사내의 묵직하고 끝없는 탐닉 아래서, 월아는 뼈가 녹아내릴 듯한 고통과 하늘을 나는 듯한 황홀감이 교차하는 거친 교성을 토해내며 온몸으로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천한 노비와 고귀한 양반이라는 수백 년 된 철옹성 같던 신분의 벽은, 타액과 땀이 질척하게 뒤섞인 뜨거운 숨결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저 수컷과 암컷, 뼛속 깊은 곳까지 서로를 탐욕스럽게 갈구하고 사랑하는 온전한 두 남녀만이 그 은밀하고도 짐승 같았던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 3: 쏟아지는 조롱 속에 피어나는 굳은 결의
달콤하고도 짐승처럼 치열했던, 그리고 치명적이었던 하룻밤의 정사는 고요했던 최 대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아침의 맑은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서재를 환하게 비출 때, 땀과 체향이 진동하는 이불자락 속에서 대감의 넓은 가슴을 베고 곤히 잠든 월아의 얼굴은, 세상 그 어떤 고귀한 양반가 규수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평온했습니다. 최 대감은 밤새도록 자신에게 안겨 숨이 넘어갈 듯 파닥거리며 흐느끼던 이 작고 사랑스러운 여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지난밤의 일이 단순한 사내의 끓어오르는 욕정 해소가 아니라 자신의 뼛속과 영혼 깊은 곳까지 단단히 옭아맨 운명적인 찐사랑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는 두 번 다시 이 여인을 곁에서 떼어놓고는 단 하루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은밀하고도 가슴 벅찬 기쁨의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하고 매서웠습니다. 밤새 서재에서 새어 나온 수상하고도 끈적한 기척들, 억눌린 여인의 교성, 그리고 날이 밝아 아침 기침을 하러 들어갔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여인의 속옷과 땀에 젖어 헝클어진 두 사람을 정면으로 목격한 하인들의 입을 통해, 이 충격적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이 달린 듯 순식간에 저택 안팎은 물론 한양 도성 전체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천지가 개벽할 말세지 말세야! 대쪽 같던 대감마님이 밤새 그 요망하고 어린 종년의 치마폭에 싸여 짐승처럼 헐떡이며 흉내를 냈다지 뭔가!"
"글쎄 말이네! 아무리 오랜 세월 홀아비 사정이 딱하고 외롭다지만, 널리고 널린 게 반반한 기생년들이거늘 어찌 그 많은 기생을 다 내버려 두고 하필 우리 집의 천하디천한 종년의 몸을 탐한단 말인가. 우리 가문의 높디높은 명예가 하루아침에 개똥밭에 구르게 생겼네 그려!"
사랑채 뒷마당과 부엌은 종기들끼리 수군거리고 혀를 차는 소리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습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월아를 바라보는 다른 하녀들과 노비들의 시선은 지독한 시기심과 멸시, 그리고 경멸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가 치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갈 때면 다들 들으라는 듯 커다랗게 헛기침을 하거나 바닥에 침을 퉤퉤 뱉기 일쑤였습니다. '꼬리 친 여우 같은 년', '제 주제도 모르고 양반의 씨를 품으려는 요물'이라는 험악한 욕설이 비수처럼 월아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급기야 이 흉흉하고 수치스러운 소문은 최 대감 가문의 윗대 친척 어르신들과 조정의 대신들의 귀에까지 적나라하게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최 대감의 사촌 형이자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실세인 박 대감이 수십 명의 호위 무사들을 거느리고 불호령을 내리며 저택으로 거칠게 들이닥쳤습니다.
"이보게, 자네 미쳤는가! 단단히 미친 게야! 지엄한 사대부의 체통과 선비의 도리를 어찌 이리 진흙탕에 구르는 헌신짝처럼 내버린단 말인가! 천한 종년의 속살을 탐하며 발정 난 개처럼 구른 것도 모자라, 그 요망한 년을 쫓아내기는커녕 아예 안방에 끼고 돈다니! 당장 그 더러운 년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내어 멍석 말이 하여 때려죽이거나, 저 멀리 관아의 관비로 팔아넘기게! 가문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어찌 조상님들 뵐 낯을 이리 뭉개버리는가!"
박 대감의 서슬 퍼런 분노의 호통이 대청마루를 쩌렁쩌렁 울리며 기왓장을 흔들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서 덜덜 떨며 다듬이질을 하던 월아는 그 끔찍한 소리에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습니다. 멍석말이라는 단어에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감히 하늘을 품어 대감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더러운 오점을 남겼다는 극심한 죄책감과 공포에, 당장이라도 저 깊은 우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 싶은 비참한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방 상석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있는 최 대감의 표정은 수천 년 된 바위처럼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두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맹렬하게,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매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형님. 도대체 체통과 명예라 하심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사람의 진정한 도리는 허울 좋은 가죽이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이 아니라, 뜨거운 피가 흐르는 그 심장에 있는 법입니다. 월아는 비록 천출의 노비 신분이나, 그 아이의 심성과 도리는 뇌물을 받고 백성을 핍박하는 권세가들의 안방마님들보다 백번 천번 더 고결하고 순결합니다. 내 그 여인을 한낱 욕정으로 안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사내로서 연모하여 품은 것인데, 어찌 남의 눈치를 보며 내 품에 안긴 가엾은 내 여인을 길바닥에 개처럼 내치란 말입니까."
"뭐, 뭣이? 연모? 자네가 지금 그깟 노비 년에게 감히 연모라는 신성한 단어를 썼는가! 이 미친 사람아! 자네가 정녕 가문의 족보에서 이름이 붉은 줄로 파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조리돌림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그리하시지요. 제 이름을 호적에서 파내시든, 조정에 압력을 넣어 제 관직을 빼앗든 모두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제 목에 시퍼런 칼이 들어와도 월아는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내어줄 수 없습니다. 아니, 저는 그 여인을 밤에만 안는 비루한 첩실이 아니라, 제 모든 것을 걸고 정실부인으로 당당히 맞이하여 평생을 함께할 작정입니다!"
최 대감의 입에서 단호하게 튀어나온 '정실부인'이라는 세 글자에 박 대감은 뒷목을 잡고 피를 토할 듯 쓰러지며 비틀거렸고, 문밖에서 숨죽여 엿듣던 하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눈알이 튀어나올 듯 놀라 서로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조선 팔도 개국 이래, 고귀한 사대부 양반이 천한 몸종을 첩도 아니고 조상님을 모시는 안방마님으로 들이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단단히 미친 자의 헛소리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하고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박 대감이 노발대발하며 이 미친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길길이 날뛰며 집을 떠난 후, 최 대감은 마당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습니다. 그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훔치며 짐승처럼 떨고 있는 월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주변 하인들의 경악스러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두 손으로 월아의 작은 어깨를 꽉 쥐어 일으켜 세웠습니다.
"울지 마라. 네가 천한 신분 때문에 흘려야 할 비참한 눈물은 오늘 이 순간이 마지막이다. 세상천지가 나를 미치광이라 손가락질하고 조롱한다 해도, 나는 이 굳건한 두 팔로 널 끝까지 지킬 것이다. 내가 널 양반의 첩실로 어두운 뒷방에 숨겨두고 밤에만 몰래 안는 비겁하고 비루한 사내로 아느냐."
최 대감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는 늙은 집사 아범을 향해 서릿발 같으면서도 불꽃이 튀는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습니다.
"아범! 당장 서재 깊숙한 금고에 있는 내 전답 문서와 노비 문서가 든 오동나무 궤짝을 이 마당 한가운데로 내오너라! 그리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 화로를 대령해라! 오늘 내 손으로 이 지독한 굴레를 박살 내 버릴 것이다!"
명령을 내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떤 거센 폭풍우와 세상의 잣대도 꺾을 수 없는, 한 여인을 향한 맹목적이고도 뜨거운 진짜 수컷의 결의가 거대한 화산처럼 폭발적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4: 전 재산을 건 파격적인 선언
얼굴이 하얗게 질린 늙은 집사 아범이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묵직한 무쇠 장식이 달린 커다란 오동나무 궤짝을 대청마루 위로 조심스레 끙끙대며 들고나왔습니다. 겉면에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궤짝은, 대대로 최 대감 가문의 어마어마한 토지 문서와 노비 문서, 그리고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가장 막중한 재산들이 보관되어 있는 그야말로 가문의 심장과도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이윽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장정 두 명이 간신히 들법한 커다란 무쇠 화로가 놓였고, 그 안에서는 벌겋게 달아오른 참나무 숯불이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소문을 듣고 사색이 되어 몰려든 수십 명의 하인들과 노비들이 숨죽여 웅성거리며 서 있었고,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에는 도대체 저 대쪽 같고 피도 눈물도 없다던 얼음장 같은 대감마님이 무슨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려는 것인지에 대한 지독한 호기심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마치 지금 겉잡을 수 없이 거칠게 끓어오르고 있는 최 대감의 거센 심장 박동과도 같았습니다.
최 대감은 굳은 얼굴로 마루에 우뚝 서서, 허리춤에서 꺼낸 차가운 쇳대(열쇠)로 오동나무 궤짝의 굳게 닫힌 자물쇠를 철컥, 하고 열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궤짝의 무거운 뚜껑이 열리자, 누렇게 바랜 수백 장의 한지 문서들이 빼곡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의 피와 땀을 쥐어짜 내고, 평생을 옭아매는 신분이라는 지독한 굴레가 적혀있는 끔찍한 종이 무덤이었습니다. 최 대감의 크고 투박한 손이 그 문서들 사이를 거침없이 헤집더니, 이내 끄트머리에 관아의 붉은 관인과 작은 지장이 선명하게 찍힌 낡은 한지 한 장을 쑥 뽑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여 년 전, 지독한 흉년으로 굶어 죽어가는 부모의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단돈 엽전 몇 푼에 자신의 몸과 일생을 팔아넘겨야만 했던 가엾고 불쌍한 어린 소녀, 월아의 노비 문서였습니다.
"모두들 두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보거라! 그리고 두 귀를 활짝 열고 내 말을 똑똑히 새겨들으라!"
최 대감의 벼락같은 호통이 쩌렁쩌렁하게 마당을 울리며 기왓장을 뒤흔들자, 헉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하인들은 일제히 땅바닥에 납작하게 넙죽 엎드렸습니다. 구석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사시나무 떨듯 서 있던 월아 역시, 자신의 가혹한 운명이 적힌 그 낡은 종잇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 알량한 종잇장 하나가 대체 무엇이더냐! 하늘 아래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숨을 쉬고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를 무참히 빼앗고, 짐승처럼 부리며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게 만드는 이 알량한 종잇장 하나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양반의 고고한 법도? 사대부의 알량한 체면? 내 평생을 그 허울 좋은 껍데기 속에 갇혀 내 심장이 진정으로 뛰는 법조차 잊고, 죽은 송장처럼 살아왔다. 허나, 이제 나는 이 썩어빠진 가짜 인생과 지독한 위선을 내 손으로 끝낼 것이다! 내 여인을 위해 기꺼이 미치광이가 될 것이다!"
최 대감은 핏발이 선 눈으로 마당을 한 번 매섭게 훑어보더니,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거친 손에 들려있던 월아의 노비 문서를 맹렬하게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 속으로 미련 없이 휙 던져 넣었습니다.
"아, 아니 되옵니다! 대감마님! 그게 어떤 문서인데!"
집사 아범과 늙은 유모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문서는 이미 화로의 거센 불길을 만나 순식간에 시뻘건 불기둥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파스락, 파스락. 한 인간의 영혼을 평생토록 옭아매던 무겁고 끔찍한 사슬이 한 줌의 재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아... 나의 주홍글씨가... 나를 평생 짐승만도 못한 죄인으로 만들었던 저 천한 낙인이... 서방님의 손에 의해 붉은 재가 되어 날아가고 있어... 저분이 정녕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셨어...'
월아는 믿을 수 없는 구원의 광경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폭포수 같은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습니다. 자신을 평생 얽어매던 신분이라는 무서운 족쇄를, 천하의 대쪽 같던 사내가 오직 자신을 향한 뜨거운 연정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박살 내버린 것입니다. 최 대감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든든하게 등지고 서서, 다시 한번 궤짝 안으로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번에는 가문의 엄청난 재산이 걸려있는 수천 마지기의 기름진 전답 문서와 거액의 은표들이 한 움큼 쥐어져 나왔습니다.
"이깟 재물! 이깟 기와집! 내 심장을 뛰게 한 내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천하의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내 당장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관아로 달려가, 이 모든 전답을 모조리 나라에 바쳐서라도 월아의 천적(賤籍)을 깨끗이 면천시키고, 평민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끌어올릴 것이다! 양반 가문에서 나를 패륜아라 손가락질하며 조상들의 호적에서 파낸다면, 내 기꺼이 이 잘난 대감의 갓을 벗어 던지고 한낱 촌부로 돌아가 내 여인과 함께 흙을 파고 밭을 갈며 살 것이다! 똑똑히 새겨들어라. 오늘 이 시간부로 월아는 너희들과 같은 천한 종년이 아니라, 장차 이 최씨 가문의 안방을 떳떳하게 차지할 고귀한 나의 정실부인이 될 사람이다!"
그 서슬 퍼런, 그러나 심장을 갈기갈기 찢을 듯 절절하고도 맹목적인 사내의 폭탄선언에 마당은 말 그대로 쥐죽은 듯한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쏟아지는 세상의 조롱과 가문의 멸문지화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전 재산을 걸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픈 과거를 불태워버린 사내. 최 대감은 충격에 굳어버린 하인들을 지나쳐, 눈물범벅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가엾은 월아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무릎을 굽혀 흙바닥에 주저앉더니 자신의 넓고 거친 두 손으로 월아의 눈물 젖은 작은 뺨을 조심스럽고도 애틋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월아야... 나의 사랑스럽고 가엾은 여인아. 이제 너의 발목을 옭아매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너는 더 이상 채찍을 맞는 나의 노비가 아니다. 너는 그저 나라는 늙고 고집스러운 사내의 심장을 통째로 집어삼킨, 나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인(情人)일 뿐이다. 이제 남들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울지 말고, 떳떳하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 품에 안겨 나를 사랑해다오."
거칠고도 뜨거운 최 대감의 입술이 수십 명 하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월아의 덜덜 떨리는 이마에, 짠맛이 나는 눈물 젖은 눈꺼풀에, 그리고 마침내 숨을 헐떡이는 붉은 입술 위에 깊고 진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주변의 하인들은 그 숨 막히도록 파격적이고 아찔한 두 남녀의 입맞춤에 헉 소리를 내며 놀라 어쩔 줄 모르며 하나둘씩 고개를 푹 숙이거나 뒤돌아섰습니다. 뒤에서 타오르는 화로의 시뻘건 열기보다, 두 남녀를 감싸고도는 그 끈적하고도 맹렬한 사랑의 열기가 온 저택을 온전히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 5: 세상의 잣대를 부순 눈물의 혼례식
가문을 발칵 뒤집어 놓고 온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날의 폭풍 같은 선언 이후, 세상의 시선은 짐작했던 대로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매서웠습니다. 한양의 콧대 높은 사대부 가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최 대감과의 발길을 일제히 끊어버렸고, 문중의 어르신들은 족보에서 최 대감의 이름을 시뻘건 먹으로 삭선하며 그를 가문의 수치이자 버림받은 패륜아로 영원히 낙인찍었습니다. 평소 대감의 저택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알랑거리며 온갖 진상품을 가져다 바치던 벼슬아치들과 양반들은 혼례식 당일, 단 한 명도 코빼기를 비치지 않고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채 앞 넓은 마당에 차려진 혼례식장은 그 어느 뼈대 있는 양반가의 잔치보다도 눈부시고, 그 어떤 화려한 혼례보다도 뜨겁고 벅찬 감동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양반들에게 외면당해 기와집 대문이 굳게 닫힐 줄 알았던 최 대감은 오히려 자신의 남은 재산을 아낌없이 탈탈 털어, 평생을 가난과 천대 속에 소나 돼지처럼 살아온 고을의 평민들과 길거리를 떠도는 거지들, 그리고 자신의 집 하인들을 모두 가장 귀한 상객으로 모시어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성대한 잔칫상을 차려 냈습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둘러앉아 고기를 뜯고 독한 술을 마시며 춤을 추었고, 두 사람의 험난했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진정한 인간들의 축제의 장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정녕 허황된 꿈은 아니겠지요... 길바닥의 잡초만도 못했던 천한 제가, 감히 대감마님의 정실부인으로 이 붉고 아름다운 활옷을 입게 되다니요... 서방님,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나의 서방님...'
안방에서 홀로 혼례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월아는 은장식이 달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피부를 긁어대는 까슬까슬한 무명 베적삼만 걸치던 그녀의 갸녀린 몸에는, 한양 최고급 비단으로 지은 붉은 활옷과 화려한 금박이 수놓아진 원삼이 눈부시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칠보장식이 영롱하게 빛나는 무거운 화관을 썼고, 연지 곤지를 붉게 찍은 그녀의 하얀 뺨과 도톰한 입술은 세상 그 어떤 흐드러지게 핀 모란꽃보다도 요염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내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며 고요한 신방에 붉은 밀랍 촛불만이 은은하고 끈적하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방 밖에서 들려오던 하객들의 왁자지껄한 취기 어린 소리도 점차 잦아들고, 오직 두 사람만의 숨 막히도록 은밀하고 긴 밤이 찾아왔습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술기운에 살짝 상기된 붉은 얼굴의 최 대감이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바닥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자신의 눈부시게 어린 신부를 향해 홀린 듯이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오 사랑하는 부인."
'부인'이라는 그 무겁고도 따뜻한 한마디에 월아의 억눌렀던 눈물이 다시금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최 대감은 굵고 투박한 사내의 손가락으로 월아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그녀의 둥근 턱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자신과 시선을 맞추게 했습니다. 사내의 깊고 짙은 눈동자 속에는 며칠을 굶주린 짐승 같은 거친 욕정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큼 깊고 숭고한 맹목적인 애정이 끈적하게 뒤엉켜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너는 내게 털끝 하나 흠집 내기 아까운 고결한 안방마님이자, 내 이성을 철저하게 미치게 만드는 요염한 나의 계집이다. 내 남은 평생을 바쳐 널 닳도록 아끼고 짐승처럼 탐할 것이니, 너의 그 고운 몸과 닫혀있던 마음을 오늘 밤 내게 남김없이 전부 열어다오."
최 대감의 목소리는 짙은 욕정으로 낮게 갈라져 짐승의 그르렁거림 같았습니다. 그는 거칠지만 조심스러운, 그러나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완력으로 월아의 머리에 무겁게 얹힌 화관과 비녀를 하나씩 빼내어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묶여있던 길고 탐스러운 흑단 같은 머리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가녀린 어깨와 붉은 뺨을 덮었습니다. 최 대감의 크고 뜨거운 손이 월아의 붉은 저고리 옷고름을 꽉 쥐었습니다. 스르륵, 매끄러운 비단 고름이 단숨에 풀리고 여러 겹의 무거운 혼례복이 한 겹 한 겹 바닥으로 스르륵 허물어질 때마다, 월아의 입술 사이로는 극도의 긴장감과 달콤한 황홀감이 뒤섞인 더운 숨결이 하아, 하고 새어 나왔습니다.
이윽고 하얀 명주 속적삼 하나만을 남긴 채 월아의 아찔하고도 풍만한 곡선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촛불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최 대감은 짐승의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푹신한 원앙금침 이불 위로 쓰러뜨렸습니다.
"앗... 서방님"
처음으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 '서방님'이라는 호칭에 최 대감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은 완전히 툭 하고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불덩이 같은 뜨거운 입술이 월아의 연지가 발라진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고, 단단하고 뜨거운 사내의 육체가 부드럽고 말랑한 여인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의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길이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지나, 속적삼을 거칠게 찢어내듯 벗겨내며 부드러운 가슴의 둔덕과 움푹 파인 허리선을 탐욕스럽게 훑어 내렸습니다. 그 노골적인 손길이 닿는 곳마다 월아의 온몸은 불에 덴 듯 파르르 떨리며 붉은빛으로 농염하게 달아올랐습니다. 신분이라는 껍데기를 모두 벗어 던지고 온전한 날것의 알몸이 된 두 남녀는, 오직 서로의 살갗이 내뿜는 지독하고 비릿한 체향과 끈적한 쾌락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습니다. 방 안에는 비단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땀에 젖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질척한 마찰음, 그리고 끝내 억눌리지 못한 짐승 같은 교성과 짐승의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밤새도록 끊임없이 흘러넘쳤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조롱과 비난에 맞서 완벽하게 승리한, 진정으로 자유롭고도 타락할 만큼 눈부신 두 사람만의 완벽한 쾌락의 성전(聖殿)이었습니다.
※ 6: 백발이 맺어준 영원한 순정
그렇게 조선 팔도를 들썩이게 하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파격적인 혼례가 치러진 지도 어느덧 십수 년이라는 긴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당연하게 주어질 줄 알았던 화려한 벼슬길도 가차 없이 마다하고 문중의 족보에서도 무참히 쫓겨난 최 대감이었지만, 그는 남은 재산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굴려 도성이 있는 한양을 미련 없이 떠나, 저 남쪽 따뜻하고 경치 좋은 지리산 산자락 아래 넓은 터를 잡았습니다. 비록 예전 한양 도성에서 누리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세는 잃었을지언정, 그의 눈빛은 깐깐하고 독기 서려 있던 과거의 날 선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온화해져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양반이 노비 년의 치마폭에 홀려 인생을 망친 멍청한 놈이라며 뒤에서 혀를 찼지만, 정작 최 대감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은 그 어떤 한양의 명문대가의 삶보다도 풍요롭고 단단한 기품이 흘러넘쳤습니다.
화창한 봄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의 나른한 오후. 넓은 대청마루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던 최 대감의 입가에 잔잔하고 깊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마당 한편에서는 최 대감의 짙은 눈썹과 곧은 콧대를 쏙 빼닮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총명한 열 살 배기 첫째 아들이 목청 높여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고, 그 곁에서는 월아의 고운 자태와 맑은 눈망울을 그대로 물려받은 어여쁜 일곱 살 배기 딸아이가 툇마루에 앉아 앵두 같은 입술을 내밀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툰 자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마당을 가득 채우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책 읽는 소리는, 그 옛날 헛기침 소리 하나조차 낼 수 없었던 서늘하고 삭막하기만 했던 대감의 과거 삶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눈부신 풍경이었습니다.
"서방님, 볕이 참으로 따사롭고 좋습니다. 글을 읽으시느라 목이 마르실 텐데 잠시 책을 덮으시고 차 한잔하시지요."
옥구슬이 은쟁반을 굴러가듯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열리며 월아가 정갈한 다과상을 들고나왔습니다. 삼십 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그녀의 자태는 예전의 겁 많고 앳된 티를 완전히 벗고, 이제는 한 집안을 넉넉히 품어 안는 기품 있고 성숙한 안방마님의 우아함 그 자체였습니다. 최고급 명주로 지어진 옅은 분홍빛 단아한 당의를 입고 사뿐사뿐 마루를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과거 낡고 해진 무명 치마를 입고 서재 밖에서 눈물짓던 가엾은 천출 몸종의 흔적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최 대감은 읽고 있던 책을 미련 없이 덮고, 다가와 찻상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월아의 하얀 손을 덥석 끌어당겨 자신의 넓은 품 옆자리에 바짝 당겨 앉혔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빤히 봅니다, 서방님. 대낮부터 어찌 이러십니까,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월아가 붉게 상기된 뺨을 하며 작게 타박했지만, 최 대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더욱 꽉 쥐어 자신의 허벅지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과거 궂은일로 거칠고 상처투성이로 느껴졌던 그녀의 손바닥은 이제 고생을 잊은 듯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습니다. 최 대감은 그 부드러운 손등에 애틋하고도 짙게 입술을 맞추며, 십수 년 전 그날 밤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던 맹렬하게 타오르던 욕정과 사랑이 여전히 자신의 단전 속에서 조금도 식지 않고 펄떡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체통? 허허, 내 오래전 그날 마당에서 가문의 궤짝과 문서들을 불태운 그날 이후로 빌어먹을 체통 따위는 산짐승들에게나 던져줘 버린 지 오래거늘. 내게 남은 유일한 체통은 오직 내 눈부시게 예쁜 부인을 매일 밤낮으로 땀나게 아껴주고 품어주는 것뿐이오."
"어머머... 서방님도 참, 흰머리가 늘어나셔도 어찌 늙지도 않으시는지 그 능글맞고 남부끄러운 농담은 해가 갈수록 더하십니다."
월아는 곱게 눈흘김을 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그 짙고 깊은, 십 년 전과 똑같은 굶주린 수컷의 눈빛에 여전히 처녀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며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밤이 되어 이불을 펴면 이 점잖고 다정한 사내가 어김없이 맹렬한 짐승으로 돌변하여 자신의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놓는다는 것을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아야."
최 대감의 장난기 섞인 다정한 목소리가 어느새 한없이 낮고 진지해졌습니다. 그는 희끗희끗한 세월의 새치가 섞인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사랑하는 아내의 크고 맑은 눈동자를 깊이, 아주 깊이 응시했습니다.
"그 옛날, 내가 미쳐서 널 취하고 내 모든 것을 걸어 널 정실로 내 곁에 두겠다고 했을 때... 널 지키기 위해 내 손으로 가문의 족보를 불태우고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았던 그 무모했던 선택을, 나는 지난 십수 년간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네가 아니었다면 내 가슴은 평생 남의 눈치나 보며 얼음처럼 차갑게 썩어 문드러져 얼어 죽었을 것이다. 나를 진정한 사내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사랑을 아는 인간으로 살게 해 주어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다."
그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절절한 고백에 월아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녀는 대감의 넓고 단단한 어깨에 조용히 머리를 기대며,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단단하고 영원할 사내의 뜨거운 순정 품 안에서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함과 벅찬 행복을 느꼈습니다. 신분과 억압이라는 철옹성 같던 세상의 무서운 잣대를 단숨에 박살 내고, 오직 심장이 이끄는 맹목적인 사랑과 욕정 하나로 완벽한 세상을 창조해 낸 진짜 사내. 최 대감과 월아의 이 지독하고도 끈적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순정은 대대손손 결코 늙지 않는 뜨거운 전설이 되어 그들의 따뜻한 기와집 안에서 영원히 이어져 갔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다 가진 대쪽 같은 양반이, 천한 신분의 여인을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온 세상을 미련 없이 불태워버린 지독하고도 아찔한 순애보.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뛰게 한 오늘 밤의 은밀한 야담이 마음에 드셨나요? 모든 것을 던진 진짜 사내의 거침없는 순정에 심장이 짜릿하셨다면, 잊지 말고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세요! 다음 시간에도 여러분의 잠 못 드는 밤을 후끈하게 달궈줄, 더 은밀하고 쫀득한 양반들의 기막힌 사극 로맨스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뜨겁고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