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의 은혜를 평생 갚은 선비
『노비의 은혜를 평생 갚은 선비』 『계서야담(溪西野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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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69자)
한겨울 눈보라 속 과거 길, 고개를 넘던 가난한 선비 하나가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한 노비가 자기 솜옷을 벗어 선비에게 입히고, 등에 업어 외딴 주막까지 옮겨 주었으니… 선비는 그 자리에서 눈물로 맹세하였지요. "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으리다." 삼십 년 세월이 흘러 선비는 정승의 자리에 올랐건만, 그는 그 약속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체면과 법도로 얽힌 반상(班常)의 벽을 뛰어넘어, 한 선비가 한 노비에게 갚아 나간 평생의 은혜. 오늘 밤, 그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1: 과거 길에서 얼어 죽을 뻔한 선비 이정원을 구한 노비 만덕
때는 숙종(肅宗) 임금 시절, 경상도 상주 땅에 이정원(李正源)이라 하는 가난한 선비 하나가 있었습니다. 집안은 비록 양반이라 하나 삼대(三代)를 내리 과거에 낙방하여 가세는 이미 기울 대로 기운 처지였지요. 오로지 책 한 권과 벼루 하나를 벗 삼아 스무 해를 공부한 끝에, 그 해 식년시(式年試)에 응하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때는 동짓달 그믐께. 하필 과거 길에 하늘이 심술을 부렸는지, 조령(鳥嶺) 고개를 넘으려는데 그야말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정원은 얇은 도포 하나에 짚신을 신고 지팡이 하나에 몸을 기대어 간신히 걸음을 옮겼으나, 살을 에는 칼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하고 손발이 점점 굳어 왔지요.
'아이고, 이대로 가다가는 고개도 못 넘고 얼어 죽겠구나…'
정원은 눈 덮인 바위 옆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등에 진 책 보퉁이는 이미 물에 젖어 어깨를 짓누르고, 입김이 서리가 되어 수염에 하얗게 엉겨 붙었지요.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며 그는 스무 해 공부가 이 눈밭에서 끝나는구나 싶어 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였지요. 저 멀리 눈발 사이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성큼성큼 다가온 한 사내가 외쳤습니다.
"이보시오, 나리! 정신 차리시오! 여기서 주무시면 큰일 나오!"
정원이 간신히 눈을 뜨니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건장한 사내 하나가 그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행색을 보니 허름한 무명옷에 어깨에는 땔나무 지게를 진, 영락없는 노비의 차림이었지요. 사내는 두말없이 자기가 입고 있던 솜저고리를 훌떡 벗어 정원에게 입혔습니다.
"나, 나는 괜찮소이다… 그대는 어쩌려고…"
"쇤네야 산에서 나무하는 놈이라 추위에 이골이 났습니다요. 나리는 책 읽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이러다 얼어 죽으면 평생 공부가 다 헛것이 되옵니다."
사내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정원을 번쩍 들어 자기 등에 들쳐 업었습니다. 지게는 옆으로 치우고, 젖은 책 보퉁이만 한 손에 꼭 쥐고서 말이지요. 사내의 등은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걸음은 눈보라 속에서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정원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그 등 너머로 사내의 굳센 목덜미를 보며 생각했지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제 옷을 벗어 주고 나를 업어 주다니…'
한 식경(食頃)쯤 걸었을까요. 사내는 마침내 고갯마루 아래 자리한 외딴 주막 하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안주인이 화들짝 놀라 화롯불을 살리고, 뜨거운 숭늉 한 그릇을 내오자 사내는 정원을 아랫목에 눕히고 그 숭늉을 한 모금씩 떠먹였습니다.
"자… 한 모금만 더 드시지요. 이리하면 곧 몸이 풀리실 것입니다요."
정원은 숭늉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비로소 손끝 발끝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내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화롯가에 털썩 주저앉았지요. 정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대… 이름이 무어요?"
"쇤네는 저 아랫마을 박 진사(朴進士) 댁 종놈으로, 이름은 만덕(萬德)이라 하옵니다."
"박 진사 댁… 만덕이라…"
정원은 그 이름 석 자를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를 구해 준 이 사내의 얼굴을, 그 목소리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되뇌며 말이지요. 화롯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 사이로, 바깥 눈보라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 2: 주막에서 정원이 만덕에게 평생의 은혜를 맹세한 뒤 이별하다
밤이 깊어지자 주막은 고요해졌습니다. 주모도 옆방에 건너가 잠이 들고, 화롯불만 붉게 타오르는 방 안에 정원과 만덕 두 사람만이 마주 앉아 있었지요. 정원은 이제 몸이 어지간히 풀리자, 만덕의 손을 꼭 잡고 깊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대가 오늘 내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이는 부모가 주신 것과 다를 바 없는 크나큰 은혜일세. 내 이 은혜를 어찌 잊겠는가."
만덕이 깜짝 놀라 양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아이고, 나리!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요! 쇤네 같은 종놈한테 양반 어르신께서 머리를 숙이시다니, 하늘이 벌을 내리십니다요!"
"허어, 신분이 무엇이 대수란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구한 것이니, 이는 신분 위에 있는 도리일세. 만덕이, 자네 내 말 잘 들어 보게."
정원은 화롯불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의 눈빛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였지요.
"나 이정원, 오늘 이 주막에서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라. 만덕이 자네가 베풀어 준 이 은혜, 내 평생 잊지 아니하겠네. 만약 내가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다면, 반드시 자네를 찾아 그 은혜를 갚을 것이요, 설령 그리 되지 못하고 평생 초야에 묻힌다 하여도, 한 해에 한 번은 반드시 자네를 찾아 문안을 드리리라."
만덕이 눈이 동그래져서 정원을 바라보았습니다. 태어나서 양반에게 이런 말을 들어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지요. 그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나리… 쇤네는 그저 지나가다 사람 하나 살려 드린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아닐세. 자네는 자네 옷을 벗어 나를 입혀 주었네. 그 솜저고리 한 벌이 자네에게는 한 해 겨울을 나는 유일한 옷일 터인데 말일세. 그 마음이 어찌 작은 것이겠는가."
"나리…"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원이 자기가 상주에서 올라온 가난한 선비라 소개하자, 만덕도 자기 사정을 조금씩 털어놓았지요. 만덕에게는 병든 노모(老母)와 어린 아들 하나가 있다 하였습니다. 본래는 양인(良人)이었으나 어느 해 흉년에 곡식 몇 섬을 꾸었다가 갚지 못해 일가가 박 진사 댁에 몸을 팔아 종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박 진사 나리께서는 어떠하신가?"
정원이 조심스레 묻자, 만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씁쓸히 웃었습니다.
"뭐… 그저 그렇습지요.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인가 싶습니다요."
정원은 그 한마디에 만덕 일가의 사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자기 한 몸도 간수하기 힘든 처지이니, 가슴에 그 사연을 새겨 두는 수밖에 없었지요.
이윽고 먼동이 터 오고 눈보라도 그쳤습니다. 만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나리, 쇤네는 이만 돌아가 보아야겠습니다요. 박 진사 댁에서 쇤네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요. 부디 한양에 무사히 닿으시어 장원급제하시옵소서."
"만덕이… 내 반드시 자네를 다시 찾겠네. 그때까지 부디 몸 성히 있어 주게."
정원은 품에서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은자(銀子) 한 냥을 꺼내 만덕의 손에 쥐여 주려 하였으나, 만덕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하였습니다.
"나리, 쇤네가 어찌 사람 값을 받겠습니까요. 그 돈으로 한양까지 여비에 보태 쓰시옵소서. 쇤네는 나리께서 장원급제하시는 것만으로도 만족입니다요."
그렇게 두 사람은 주막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만덕이 지게를 지고 눈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뒷모습을, 정원은 그가 산모퉁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서서 지켜보았지요. 가슴속에 새겨진 약속 하나를 꼭꼭 눌러 담으며 말입니다.
※ 3: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정원이 삼십 년을 만덕을 찾다
한양에 닿은 이정원은 그해 식년시에 당당히 급제하였으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늘 조령 고개의 눈보라와 만덕의 등짝이 함께 새겨져 있었지요. 장원급제 후 주어진 말미에 그는 서둘러 상주로 내려갔으나, 본가에 들르기 전에 먼저 조령 인근 박 진사 댁을 수소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박 진사 댁은 벌써 일 년 전 몰락하여 일가가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었지요.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집과 전답을 모조리 가져가고, 종들도 이 집 저 집으로 팔려 갔다 하였습니다. 만덕 일가가 어디로 갔는지는 마을 사람 누구도 알지 못하였지요.
'이런… 한 발 늦었구나. 그래도 반드시 찾아내리라.'
정원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벼슬살이에 매인 몸이라 직접 팔도를 누빌 수는 없었으나, 가는 고을마다 아전을 통해 박 진사 댁 옛 종이었던 만덕이라는 자를 수소문하였지요. 경상도 일대는 물론이요, 충청, 전라, 강원까지 그의 사람들이 오가며 만덕의 종적을 쫓았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정원은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를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랐고, 백발이 드문드문 비치기 시작하였지요. 그의 부인 윤씨(尹氏)는 남편이 이따금 한숨을 쉬며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대감, 요즘 무슨 근심이 있으시옵니까? 혹 조정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시는지요?"
"아니오, 부인. 조정 일이야 순조롭소만… 내 평생에 갚지 못한 빚이 하나 있어 가슴이 무거울 뿐이오."
"빚이라니요? 재물의 일이옵니까?"
정원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오. 재물보다 더 큰 빚이오. 한 사람의 목숨 빚이지."
그리고는 부인에게 조령 고개의 일을 처음으로 털어놓았습니다. 스무 해 가까이 마음속에만 품어 온 이야기였지요. 윤씨 부인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감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사옵니다. 소첩도 힘을 보태겠사오니, 반드시 그 분을 찾으시옵소서."
그 뒤로 부인도 친정 쪽 인맥을 동원하여 함께 수소문하였습니다. 세월은 또 흘러 정원이 마침내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올랐으니, 조령에서 만덕을 만난 지 어언 이십칠 년이 지난 때였지요. 그해 봄, 충청도 아산 땅에 출장 나간 정원의 사람이 드디어 소식을 물어 왔습니다.
"대감마님, 마침내 찾은 듯하옵니다. 아산 고을 홍 판관(洪判官) 댁에 박 진사 댁에서 팔려 왔다는 늙은 종 하나가 있다 하옵는데, 이름이 만덕이라 하옵고, 조령 부근에서 왔다 하옵니다."
정원은 그 말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고, 눈에는 왈칵 눈물이 고였지요.
"정녕이냐? 정녕 만덕이 거기에 있단 말이냐?"
"그리 들었사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냐?"
"그 자가… 나이 예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종살이를 하고 있다 하옵고, 근자에 큰 병을 얻어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하옵니다. 홍 판관 댁이 그 노모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들 하나가 있어 함께 종으로 살고 있다 하옵니다."
정원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지요. 이십칠 년 전 자기를 눈보라에서 구해 준 그 건장하던 사내가, 이제는 병든 몸으로 남의 집 종살이에 묶여 있다는 말에 그는 그만 벽을 짚고 주저앉을 뻔하였습니다.
"내 내일 당장 아산으로 내려가리라. 준비하거라."
"대감마님, 조정의 일이 있사온데…"
"조정 일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내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 병중에 있다는데 어찌 한가로이 앉아 있겠느냐. 당장 채비를 하거라."
정원은 그 길로 상감께 말미를 청하는 계(啓)를 올리고, 하인 몇만 데리고 아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이십칠 년 전 눈보라 속에서 한 맹세가, 이제야 비로소 지켜질 참이었지요.
※ 4: 마침내 찾은 만덕의 비참한 처지에 정원이 눈물을 쏟다
아산 땅 홍 판관의 집은 고을에서도 제법 위세가 있는 양반가였습니다. 대문 앞에 정원이 당도하자 홍 판관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였지요. 당대의 예조참판이 직접 행차하였으니 지방의 판관으로서는 하늘 같은 손님이었던 것입니다.
"대감, 어인 일로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사옵니까?"
정원은 가벼이 고개를 숙이고는 대청에 올라 차 한 잔을 받은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홍 판관, 내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다름 아니라 이 댁 종 중에 만덕이라는 자가 있다 들어서네. 혹 사실인가?"
"예? 만덕이… 예, 있사옵니다. 그런데 그 늙은 종을 어찌 대감께서…"
"내 그를 만나야겠네. 지금 어디에 있는가."
홍 판관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으나 감히 당상관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지요. 그는 하인을 시켜 만덕이 기거하는 행랑채로 정원을 안내하였습니다. 그 행랑채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던지, 문풍지가 찢어져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아궁이에는 재만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정원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해진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서른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근심 어린 얼굴로 노인의 이마를 짚고 있었지요.
정원은 노인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월이 깊게 새겨 놓은 주름과 검버섯 사이로, 그러나 눈썹의 모양과 콧날의 선은 이십칠 년 전 눈보라 속에서 자기를 업어 준 그 사내의 것이 분명하였지요. 정원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만덕이… 자네가 정녕 만덕이 맞는가?"
노인은 흐릿한 눈을 간신히 떠서 정원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쉰 목소리로 그가 되물었지요.
"쇤네는 만덕이 맞사온데… 어떠한 나리이시온지…"
"이십칠 년 전, 조령 고갯마루에서 자네가 나를 업어 주지 않았던가. 솜저고리를 벗어 입혀 주고, 주막까지 데려가 숭늉을 떠먹여 주지 않았던가."
만덕의 흐릿하던 눈동자가 서서히 또렷해졌습니다. 그는 병든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앉으려 하였지요. 그 옆의 젊은 사내 — 만덕의 아들 개똥이가 놀라 아버지를 부축하였습니다.
"아버님, 누우셔야 하옵니다."
"아니다… 아, 아니다… 나리…"
만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눈물이 주름진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요.
"나리, 설마… 그때 그 선비 나리이시옵니까? 조령에서… 눈보라 속에서…"
"그래, 내일세. 이정원일세. 자네가 구해 준 그 선비 말일세."
정원은 그 말과 함께 행랑채 맨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당대의 예조참판이 늙은 노비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뒤따라 들어온 홍 판관과 하인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였지요. 정원은 만덕의 주름진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엎드려 울었습니다.
"만덕이… 내가 늦었네. 정말 늦었네. 이십칠 년을 자네를 찾아 헤맸건만, 이제야 이 꼴로 만나게 되니… 내 어찌 자네 얼굴을 보겠는가."
만덕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정원의 손등을 어루만졌지요.
"나리… 쇤네는… 쇤네는 나리께서 급제하셨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사옵니다. 그때 이미 쇤네는 만족이었사옵니다요. 은혜는 무슨 은혜이옵니까… 쇤네가 그저 지나가다가 한 일인데…"
"아닐세. 자네의 그 한 일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네. 자네가 없었다면 이정원도 없고, 예조참판도 없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다 자네 덕일세."
방 안에는 한참 동안 두 노인의 흐느낌만이 이어졌습니다. 문 밖에 서 있던 홍 판관은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고개를 숙였고, 만덕의 아들 개똥이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눈만 휘둥그레 뜬 채 서 있었지요.
마침내 정원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홍 판관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였으나 단호하였지요.
"홍 판관. 내 이 자리에서 긴히 청할 것이 있네. 이 만덕 부자(父子)를 내게 파시게. 값은 자네가 부르는 대로 치르겠네."
홍 판관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대, 대감… 이 늙은 병자와 그 아들을 사서 무엇에 쓰시려고…"
정원은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닐세. 빚을 갚으려 하는 것이네."
※ 5: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덕 일가의 자유를 사주다
홍 판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당상관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게다가 병든 늙은 종 하나와 아들 하나가 비록 쓸모는 있다 하나, 값만 좋게 받는다면 큰 이익이었습니다. 정원은 그 자리에서 몸에 지녔던 어음(於音)과 은자를 꺼내어 후한 값을 치렀습니다.
이윽고 만덕 부자의 노비 문서가 정원의 손에 넘어왔지요. 정원은 그 문서를 받아 들고는 만덕의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하였습니다.
"만덕이, 일어나 앉아 보게."
아들 개똥이가 아비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자, 정원은 그 문서를 만덕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나리…"
"자네와 자네 아들의 노비 문서일세. 이제 자네는 내 종이 되었네."
만덕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지요.
"나리, 쇤네는… 쇤네는 나리의 종이 되는 것을 꺼리지는 않사옵니다. 다만 이 늙고 병든 몸이 나리께 짐만 될까 염려되옵니다…"
정원은 빙그레 웃더니, 이윽고 품에서 부싯돌과 한지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행동을 하였으니, 방금 받아 든 노비 문서를 바로 찢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한 번, 두 번, 세 번… 두툼한 문서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습니다.
"나, 나리! 이게 무슨 일이시옵니까!"
만덕이 깜짝 놀라 소리쳤고, 홍 판관과 하인들도 모두 경악하여 숨을 삼켰습니다. 정원은 찢어진 문서 조각들을 화롯불에 던져 넣었습니다. 불길이 확 치솟으며 종이가 재가 되어 사라졌지요.
"만덕이, 그리고 자네 아들아, 잘 듣게."
정원은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두 부자를 마주 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이십칠 년 전 주막에서와 똑같이 진지하였지요.
"내가 자네들을 산 것은 자네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함이 아닐세. 내가 자네들을 양인(良人)으로 속량(贖良)시켜 주기 위함이었네. 오늘부로 자네와 자네 아들은 양인일세. 이 문서가 불에 탔으니, 이 세상에서 자네들을 종이라 부를 자는 아무도 없네."
방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만덕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고, 아들 개똥이는 영문을 몰라 아비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지요. 이윽고 만덕의 주름진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리… 나리… 이 어찌…"
"그뿐이 아닐세. 자네가 몸이 성해지거든 내 상주의 전답 몇 마지기를 나누어 주겠네. 자네 아들에게 혼처도 알아봐 줄 것이고, 손자 대에 이르러서는 글공부도 시킬 것일세.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갚는 은혜일세."
만덕은 그만 바닥에 엎드려 소리 내어 통곡하였습니다. 예순이 넘은 늙은이가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지요. 그의 아들 개똥이도 아비와 함께 엎드려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정원은 두 부자의 등을 조용히 두드려 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한양에 알려지자 가문의 어른들이 발칵 뒤집혔지요. 정원의 사촌 형 이정헌(李正憲)이 한달음에 달려와 펄쩍 뛰었습니다.
"아우, 자네 제정신인가! 예조참판이 늙은 종 하나를 사서 속량시키고, 거기다 전답까지 나누어 준다 하니, 가문의 체면이 어찌 되는가! 양반의 법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형님, 체면이 사람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허어, 이 사람 보게! 다른 종도 아니고 남의 집 종이었던 자를 사서 풀어 준다니, 이는 가법(家法)에도 어긋나고 반상(班常)의 도리에도 어긋나는 일일세!"
정원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형님, 저는 이십칠 년 전에 그 사람의 등에 업혀 조령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정원도 없고, 예조참판도 없고, 이 집안의 오늘도 없습니다. 그 빚을 갚는 것이 어찌 가법에 어긋나는 일이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은자 몇 냥만 쥐여 주면 될 일을 어찌 문서까지 불태우고 전답까지 나누어 준단 말인가!"
"형님, 사람의 목숨은 은자 몇 냥으로 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자유올시다. 자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귀한 것이지요."
이정헌은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마침내 아우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습니다.
"자네 같은 양반은 처음 보네. 그러나 자네 뜻이 그리 굳으니, 내 더 말하지 않으리다."
그날 이후 집안에서는 아무도 정원의 결정을 입에 올리지 못하였지요.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야기는 한양 조정 안팎에 조용히 퍼져 나갔고, 많은 선비들이 그를 두고 "참된 군자(君子)"라 일컫기 시작하였습니다.
※ 6: 만덕의 옛 상전이 복수를 꾀하나 정원이 지혜로 막아내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것이 그저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지요. 만덕 부자가 속량되어 정원이 마련해 준 상주 근방의 작은 전답에서 평온히 살기 시작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뜻밖의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만덕의 옛 상전이었던 박 진사 집안의 조카뻘 되는 자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이 박태수(朴泰洙)라 하였습니다. 이 자는 숙부의 집안이 몰락하였을 때 연고 없는 조카라 하여 재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떠돌다가, 근자에 과거에 운 좋게 급제하여 말단 벼슬을 얻은 참이었지요. 그런데 이 박태수가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만덕이 이정원 대감의 도움으로 속량되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앙심을 품었습니다.
'숙부의 종이 어찌 내 허락도 없이 양인이 된단 말이냐. 게다가 땅까지 받아 잘 산다니, 이는 우리 박씨 가문을 능멸하는 처사로다.'
박태수는 제멋대로 소장(訴狀)을 꾸며 관아에 냈지요. 만덕이 본래 박 진사 댁의 종이었으니 홍 판관에게 팔린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며, 이정원이 이를 사서 속량시킨 것 또한 절차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억지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박태수가 말단이나마 벼슬아치인지라 지방 관아에서는 함부로 물리치지 못하고 사건을 접수하고 말았지요.
이 소식이 한양의 정원에게 전해지자, 그는 크게 노하였습니다.
"이런 고약한 일이 있나. 감히 내 은인을 건드리려 하는 자가 있다니."
곁에 있던 부인 윤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였습니다.
"대감, 어찌하시려 하옵니까? 저쪽이 비록 억지라 하나 관아에 접수된 일이오니, 자칫 대감의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렵사옵니다."
정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본래 성정이 강직한 그는 당장이라도 박태수를 잡아들이고 싶었으나, 그리하면 오히려 일이 커져 만덕 부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었지요. 그는 이윽고 고개를 들고 조용히 말하였습니다.
"부인, 이 일은 힘으로 누르지 아니하고 도리로 풀어야 할 일이오. 내가 직접 상주로 내려가 봐야겠소."
"직접 말씀이옵니까? 아랫사람을 보내시어도 되옵지 않겠습니까?"
"아니오. 내 은인의 일이니, 내가 몸소 가야 하오."
정원은 다시 말미를 청하여 상주로 내려갔습니다. 상주 관아에 이르자 목사(牧使)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였지요. 정원은 목사에게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고는, 박태수를 불러 대질하기를 청하였습니다.
박태수가 관아에 끌려오듯 불려 왔을 때, 그는 설마 당상관이 직접 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정원은 그를 꾸짖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드럽게 자리를 권하였지요.
"자네가 박태수인가. 앉게나."
"대, 대감… 소인이 감히…"
"자네가 낸 소장을 내가 잘 읽어 보았네. 자네의 주장인즉슨 만덕이 본래 박 진사 댁의 종이었으니 그 소유권이 박씨 가문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예, 예… 그러하옵니다…"
정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사에게 말하였습니다.
"목사, 박 진사 집안의 가문 문서를 가져오게나. 그리고 박 진사가 몰락할 당시 채권자들에게 넘긴 재산 목록도 함께 가져오시게."
잠시 후 관아의 서리가 누렇게 바랜 문서 뭉치를 가져왔습니다. 정원은 그 중 한 장을 집어 박태수 앞에 내밀었지요.
"보게. 박 진사 댁이 몰락할 당시 모든 재산은 채권자에게 공정히 넘어갔고, 노비들도 그 과정에서 정당히 매매되었네. 이는 관아의 기록에 다 남아 있는 일이지. 그러니 만덕이 홍 판관에게 팔린 것도 정당하고, 내가 홍 판관에게서 사서 속량시킨 것도 정당하네."
박태수는 문서 앞에서 더는 할 말이 없었지요. 그런데 정원은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한 가지를 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자네, 박태수. 나는 자네를 벌하지 아니하겠네."
"예? 대, 대감…"
"자네가 이리 억지를 부린 것은, 필시 가문이 몰락하며 재산 한 푼 받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숙부의 집안이 망했을 때 자네가 얼마나 막막하였을지 내 짐작하네."
박태수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뜻밖의 말이었지요.
"자네 말이 소장에는 억지이나, 그 마음에는 가여움이 있네. 그래서 내 한 가지 제안을 하겠네. 자네가 오늘 이 소장을 스스로 취하하고, 다시는 만덕 일가를 건드리지 않겠다 약조한다면, 내 자네에게 한양에서 제대로 된 자리 하나를 알아봐 주겠네. 어떠한가?"
박태수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소리쳤지요.
"대감! 소인이 잘못하였사옵니다! 어찌 대감께 대적하려 하였겠사옵니까! 소인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는 이미 하였네. 다만 자네, 앞으로는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사람을 품는 법을 배우게. 그리하면 자네도 언젠가 참된 벼슬아치가 될 것일세."
이 이야기가 상주 고을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정원을 칭송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지요.
"이 대감은 은인에게는 은혜를 갚고, 원수에게는 덕을 베푸시니, 참으로 보기 드문 군자 중의 군자로다."
박태수 또한 이 일을 계기로 사람이 변하여, 훗날 지방 수령으로 나갔을 때 백성들에게 덕을 베푸는 청백리가 되었다 하니, 정원의 관용이 한 사람의 일생까지 바꾸어 놓은 셈이었습니다.
※ 7: 만덕이 평온히 눈을 감고, 정원이 그 후손을 끝까지 돌보다
세월이 또다시 흘러, 만덕이 속량된 지 오 년째 되던 해의 가을이었습니다. 그사이 정원이 보내 준 의원의 정성 어린 치료 덕분에 만덕의 병은 많이 호전되어, 그는 작은 밭을 일구며 소박하나 평온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지요. 아들 개똥이는 정원이 주선해 준 혼처와 혼인하여 귀여운 아들 하나를 낳았고, 그 이름을 "은동(恩童)"이라 지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아이'라는 뜻이었지요.
그러나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 어느 가을날 만덕은 마침내 자리에 눕고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정원은 한달음에 상주로 달려갔지요. 이번에는 당상관의 위엄 따위는 모두 접어 두고, 그저 옛 벗을 만나러 가는 늙은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만덕의 초가집 방 안에 정원이 들어서자, 자리에 누워 있던 만덕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리… 오셨사옵니까…"
"만덕이, 내가 왔네. 나일세."
정원은 그 옆에 앉아 만덕의 마른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지요. 문득 만덕이 가녀린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나리… 쇤네는 이제 가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쇤네의 아들이 양인이 되어 장가를 들고, 손자가 태어나 '은동'이라 불리옵니다. 쇤네가 어찌 더 바라겠습니까…"
"만덕이… 고맙네. 내가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을 하여도 모자라네."
"나리… 쇤네는 그저…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을 뻔한 선비 하나를 업어 드린 것뿐이온데… 그 인연이 쇤네 일가를 이리 구원하였사옵니다… 나리야말로 쇤네의 은인이시옵니다…"
정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지요.
"아닐세. 그 눈보라 속에서 자네가 나를 업어 준 것이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인연을 시작하게 한 것일세. 자네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없었네."
만덕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아들 개똥이를 불러 머리맡에 앉히고,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손과 정원의 손을 함께 포개어 잡게 하였지요.
"개똥아… 이 대감 나리는 우리 집안의 은인이시다… 네가 평생을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감, 제 아들과 손자를 부디 끝까지 돌보아 주시옵소서…"
"걱정 말게, 만덕이. 내 약속하네. 자네 자식과 손자, 그리고 그 후손들까지 내 집안에서 대대로 돌보겠네. 이는 내 자손들에게도 유언으로 남기겠네."
만덕은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안도한 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어려 있었지요. 그렇게 만덕은 예순다섯의 나이로 평화로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원은 그의 장례를 친히 감독하고, 자기 집안의 선산(先山) 한 귀퉁이에 만덕의 묘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양반의 선산에 평민의 묘를 허락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파격이었으나, 정원은 그를 "평생의 벗"이라 부르며 뜻을 굽히지 않았지요. 묘비에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이 사람은 한 선비를 살렸고, 한 선비는 그의 평생을 갚았도다."
정원은 약속대로 만덕의 아들 개똥이를 거두어 생계를 돌보았고, 손자 은동에게는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은동은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성실히 공부한 끝에 훗날 지방에서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훈장이 되었지요. 이는 만덕 집안이 노비에서 양인으로, 다시 글하는 집안으로 세 세대에 걸쳐 신분의 계단을 올라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원이 세상을 떠날 때, 그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요.
"너희는 만덕의 후손들을 잊지 말거라. 그들은 우리 집안의 은인이니라. 내 자손이 끊어지기 전까지 그 집안과의 인연은 끊지 말라. 이것이 내 마지막 부탁이다."
정원의 자손들은 그 유지를 받들어 대대로 만덕의 후손들과 교분을 이어 갔다 전해집니다. 후세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정원은 "체면 위에 사람을 둔 참된 군자"였고, 만덕은 "양반 위에 선 참된 의인(義人)"이었다 하였지요.
『계서야담』은 이 이야기 끝에 이렇게 적어 두었으니, 오늘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한 번 되새겨 볼 만한 말씀이옵니다.
*"은혜를 받고 잊지 아니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요, 은혜를 갚음에 신분을 가리지 아니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라. 이정원과 만덕, 두 사람이 바로 그것을 이루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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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려드린 이야기, 어떠셨는지요. 눈보라 속에서 한 노비가 선비를 업어 준 그 작은 인연이, 한 집안 세 세대의 운명을 바꾸고 두 사람을 참된 벗으로 만들었습니다. 신분보다 사람을, 체면보다 도리를 택한 이정원 선비의 모습이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이 스며들었기를 바랍니다. 내일 밤에도 더욱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야담 한 편을 준비하여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해 주시면 새로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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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ramatic cinematic scene set in Joseon-era Korea, 16:9 widescreen aspect ratio. In the foreground, a distinguished Korean nobleman (yangban) in his late fifties wearing a deep indigo silk dopo robe and traditional black gat hat, kneeling respectfully on a wooden floor with both hands gently clasping the wrinkled hand of an elderly man. The elderly man has a white beard and weathered face, dressed in humble grey hanbok clothing, sitting on a simple straw mat with a worn blanket, looking emotionally moved with tears in his eyes. Warm golden candlelight and the soft orange glow of a traditional Korean hwaro brazier illuminate both faces, casting gentle shadows. In the background, softly out of focus, a snowy mountain pass visible through a paper-screen door, suggesting a memory of winter. Traditional Korean hanok interior with wooden beams, rice-paper walls, and subtle ink paintings. Rich cinematic lighting with deep shadows and warm highlights, painterly oil-painting texture, emotional and reverent atmosphere, historical drama aesthetic, shallow depth of field, ultra-detailed faces showing profound gratitude and friendship, no text, no watermark, no 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