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한 마리를 증인으로 세워 살인범을 잡아낸 사또
닭 한 마리를 증인으로 세워 살인범을 잡아낸 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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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250자 이상)
증인도, 흉기도 없는 기묘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순박한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진짜 범인은 교활하게 사람들 틈에 섞여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죠. 그때 마을에 새로 부임한 젊고 명석한 사또가 나타나, 난데없이 '수탉 한 마리'를 동헌 마당으로 대령하라 명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또가 미쳤다며 수군거렸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닭 한 마리가 입을 굳게 다문 살인범의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게 됩니다. 과연 사또는 어떤 기막힌 지혜로 억울한 자를 구하고 진짜 범인을 무릎 꿇렸을까요?
※ 1: 핏빛으로 물든 갈대밭, 억울한 누명을 쓴 칠성
늦가을의 차가운 삭풍이 스산하게 불어오던 어느 해 질 녘이었습니다. 마을 어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갈대밭은,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을 받아 마치 핏빛으로 타오르는 듯한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마른 갈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사각사각, 스스슥 하는 스산한 마찰음을 토해냈습니다. 그 갈대밭 사이로 난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지게를 짊어진 한 사내가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칠성. 홀어머니를 모시며 남의 집 농사일을 돕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파는, 마을에서 제일가가는 효자이자 법 없이도 살 순박하고 부지런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날도 칠성은 새벽안개를 뚫고 장터에 나가 장작을 모두 판 뒤, 어머니의 오랜 해소 기침을 달래줄 귀한 도라지청을 품에 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벌써 마을 초입에 다다랐을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가라앉은 갈대밭의 공기가 칠성의 발걸음을 자꾸만 늦추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람 소리 사이로, 아주 미세하지만 짐승의 앓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의 억눌린 신음 같기도 한 기괴한 소리가 칠성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으윽... 끄으윽..."
칠성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환청이라 넘기려 했으나, 다시 한번 고통에 찬 둔탁한 신음이 갈대밭 깊은 곳에서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평소 겁이 많았던 칠성이었지만, 누군가 크게 다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게를 내려놓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갈대를 헤치며 들어갔습니다.
"게... 뉘시오? 어디 다치기라도 하신 게요?"
몇 걸음 들어가지 않아 칠성의 시선이 땅바닥에 멈췄고, 그 순간 칠성은 숨을 헉 들이켜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바싹 마른 흙바닥 위로 시뻘건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그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고리대금업으로 악명 높던 황 영감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뒷머리를 둔기에 강하게 얻어맞은 듯, 끔찍한 상처에서 끊임없이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그의 비단옷을 처참하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황 영감님!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칠성은 공포와 다급함에 이성을 잃고 황 영감의 곁으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습니다. 어떻게든 피를 멈춰보려 자신의 거친 무명옷 소매를 찢어 상처를 틀어막았지만, 칠성의 두 손은 이미 영감의 뜨거운 피로 붉게 물들어버렸습니다. 황 영감은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더니,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가 툭 꺾이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 황 영감님이 돌아가시다니. 어서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불러와야겠다!'
사색이 된 칠성이 덜덜 떨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찰나였습니다. 등 뒤에서 갈대가 거칠게 꺾이는 소리와 함께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살인이다! 칠성이 저놈이 황 영감님을 때려죽였다!"
칠성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마을에서 노름과 주색잡기로 빚을 지고 다니며 행실이 나쁘기로 소문난 건달, 배동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습니다. 배동은 손가락으로 피투성이가 된 칠성을 가리키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 아니오! 배동이 형님!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장에서 돌아오다 신음 소리를 듣고 달려와 상처를 막아보려던 것뿐이오!"
"거짓말 마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네놈 손에 묻은 그 시뻘건 피와 옷자락에 튄 핏방울이 증거가 아니더냐! 평소 가난을 한탄하더니, 기어코 돈에 눈이 멀어 황 영감님을 뒤에서 쳐 죽이고 전대를 훔치려 한 것이 틀림없다! 여보게들! 어서 와보시오! 칠성이가 사람을 죽였소!"
배동의 교활하고도 치밀한 연기에 칠성은 억울함에 목이 메어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배동의 외침을 듣고 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갈대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광경은 참혹했습니다. 머리가 깨져 죽은 황 영감, 그리고 그 시신 곁에 무릎을 꿇은 채 양손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칠성. 그 누구도 칠성의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하며 칠성을 손가락질했고, 건장한 장정 몇 명이 달려들어 칠성의 양팔을 거칠게 뒤로 꺾어 포박했습니다.
"억울합니다! 하늘에 맹세코 저는 황 영감님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을 살리려 했을 뿐입니다!"
칠성의 처절하고 피 끓는 절규는 무정한 가을바람에 흩어져버릴 뿐이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깔린 마을 어귀, 칠성은 포승줄에 묶인 채 관아로 짐승처럼 끌려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온 칠성의 홀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지만, 차가운 관아의 철문은 매정하게 닫히고 말았습니다. 핏빛 노을 속에서 사람을 도우려던 선의가, 한순간에 살인귀라는 끔찍한 누명으로 뒤바뀐 비극적인 초겨울 밤이었습니다.
※ 2: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
칠성이 관아의 어둡고 축축한 지하 옥사에 갇힌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짙은 안개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관아를 다스리던 늙은 사또는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평안만을 챙기는 무능한 자였습니다. 그는 칠성이 살인자라는 명확한 물증이나 흉기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정황과 배동이의 요란한 증언만을 바탕으로 칠성을 모질게 고문하여 억지 자백을 받아내려 했습니다. 주리를 틀고 인두로 지지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칠성은 피를 토하며 자신의 결백을 울부짖었습니다. "죽어도...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결국 무능한 사또는 병을 핑계로 고을을 떠나버렸고, 칠성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낡은 관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조정에서 새롭게 임명한 젊은 사또가 부임해 온 것입니다. 새 사또는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매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사내였습니다. 그는 부임 첫날 환영 연회마저 물리고, 관아의 서고에 박혀 산더미처럼 쌓인 미결 사건의 장부들을 밤을 새워가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또의 날카로운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 곳은, 단연 갈대밭 황 영감 살인 사건의 기록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사건이로다. 시신은 뒷머리가 둔기에 심하게 함몰되어 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 어디에도 피 묻은 몽둥이나 돌덩이 같은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평생 남의 물건 하나 탐내지 않고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라... 만약 그가 돈을 노리고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악독한 자였다면, 어찌 피를 흘리며 시신 곁을 서성이다 발각되었겠는가. 도망치거나 흉기를 숨기기에 급급했을 터인데 말이다.'
사또는 기록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호위 무사 단 한 명만을 대동한 채, 칠성이 갇혀 있는 지하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차갑고 습한 옥사 구석에, 모진 고문으로 살이 터지고 피딱지가 엉겨 붙은 칠성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사또가 다가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부르자, 칠성은 퀭하게 파인 눈으로 사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네가 황 영감을 둔기로 쳐 죽인 칠성이더냐."
"아닙니다... 나리... 저는 그저... 장에서 돌아오다 신음 소리를 듣고... 피를 막아보려 했을 뿐입니다... 제게는 집에서 저만 기다리시는 눈먼 어머님이 계십니다... 제가 어찌 그리 끔찍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칠성의 눈물은 그 어떤 달변가의 변론보다 진실했습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자신의 억울함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걱정하는 그 애끓는 목소리에서, 사또는 칠성이 결백하다는 심증을 굳혔습니다.
사또는 감옥을 나와 사건 현장인 갈대밭을 샅샅이 다시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넌지시 탐문하며 당시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인 '배동'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배동은 본래 심성이 교활하고 일하기를 싫어하여, 죽은 황 영감에게 투전판에서 쓸 거액의 노름빚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최근 배동이가 빚 독촉에 시달려 황 영감과 길거리에서 멱살을 잡고 크게 다툰 적이 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퍼즐이 맞춰지는구나. 배동이 그놈이 빚을 갚지 않으려 황 영감을 뒤에서 둔기로 쳐 죽이고 흉기를 강물에 버린 뒤 도망치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칠성이가 시신을 발견하고 피를 묻히자,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적반하장으로 살인자라 외친 것이 틀림없어.'
사또의 두뇌가 번뜩이며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게 꿰뚫었습니다. 하지만 심증만으로는 배동이를 진범으로 잡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흉기도 없고, 다른 목격자도 없었으며, 배동은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활하고 눈치 빠른 자를 모진 고문으로 족친다 한들, 끝까지 발뺌하며 증거를 대라 적반하장으로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동헌의 마루에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사또의 입가에 문득 차갑고도 예리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물리적인 고문이나 증거가 없다면, 인간의 가장 취약한 본성, 즉 죄지은 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자극하여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만드는 함정을 파야 했습니다.
"이방은 듣거라! 내일 오시(오전 11시경)에 동헌 마당에서 황 영감 살인 사건의 공개 재판을 열 것이다! 옥에 갇힌 칠성이와 증인 배동이를 비롯하여 사건에 관심 있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마당으로 불러 모아라! 그리고..."
사또는 이방의 귀에 대고 아주 은밀하고도 기상천외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방은 사또의 명을 듣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했지만, 사또의 단호한 눈빛에 이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서둘러 준비에 나섰습니다. 진짜 범인의 숨통을 서서히 옥죄어갈 명관의 기막힌 심리전이 막을 올리기 직전이었습니다.
※ 3: 동헌에 등장한 수탉 한 마리, 수군거리는 백성들
다음 날 아침,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관아의 동헌 마당은 이른 시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모여든 마을 사람들로 몹시도 소란스러웠습니다.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가 오리무중에 빠진 살인 사건을 공개적으로 판결하겠다는 방이 붙자, 농사일마저 내팽개치고 구경을 나온 구경꾼들로 북새통을 이룬 것입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반송장이 다 된 칠성이가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 꿇어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칠성의 홀어머니가 엎드려 땅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맞은편에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진범인 배동이가, 짐짓 안타깝고 정의로운 척 위장한 표정을 지으며 양반다리를 하고 거만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배동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흉기도 없고 목격자도 나 하나뿐이다. 저 젊고 애송이 같은 사또 놈이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칠성이 놈을 족쳐서 서명을 받는 것 외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오늘 재판만 끝나면 내 빚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고, 나는 두 다리 쭉 뻗고 살게 되는 것이지.'
"사또 행차시오!"
포졸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푸른 관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젊은 사또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와 동헌 대청마루 중앙의 높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날카로운 호랑이 같은 사또의 눈빛이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쓱 훑고 지나가자, 왁자지껄하던 마당은 찬물을 끼얹은 듯 일순간에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사또의 시선이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칠성이와, 짐짓 여유로운 척 눈을 피하는 배동이의 얼굴에 번갈아 머물렀습니다.
"오늘 본관이 이 자리에 너희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황 영감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하늘의 뜻을 빌려 가려내기 위함이다!"
사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동헌 앞마당을 장엄하게 울렸습니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사또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저 젊은 명관이 어떤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를 가져와 범인을 족칠지 다들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또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사람들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가는, 너무나도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것이었습니다.
"여봐라! 준비해 둔 '그것'을 당장 마당으로 대령하도록 하여라!"
사또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건장한 포졸 두 명이 낑낑거리며 동헌 마당으로 커다란 철창을 들고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목을 길게 빼고 철창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혹시 범인을 물어뜯을 맹수나 무서운 형구라도 들어있나 싶었지만, 철창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붉은 볏을 꼿꼿하게 세운 크고 살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수탉 한 마리'였습니다.
"꼬끼오옥- 꼬꼭!"
수탉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동헌 마당에 뜬금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 황당한 광경에 숨죽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수군거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게 대체 웬 닭이란 말인가?"
"살인범을 잡겠다더니, 웬 닭 한 마리를 끌고 와? 새로 온 사또가 글공부만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홱 돌아버린 게 아니여?"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애송이 사또가 무슨 수로 범인을 잡겠나. 칠성이만 불쌍하게 되었지."
백성들의 노골적인 비웃음과 웅성거림 속에서도 사또는 흔들림 없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엷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군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배동 역시 그 엉뚱한 광경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열한 썩소를 흘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저 애송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닭 따위로 살인범을 잡겠다니, 오늘 재판은 볼 것도 없이 내 승리다.'
사또가 무겁게 부채를 들어 책상을 탁! 내리치자 마당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사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수탉이 든 철창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다들 조용히 하라! 이 닭을 장터에서 흔히 보는 촌닭 쯤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이 수탉은 본관이 계룡산 깊은 산속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모셔 온, 귀신을 보고 영혼을 꿰뚫어 보는 신령스러운 닭, 즉 '신계(神鷄)'니라!"
사또의 황당무계한 선언에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사또는 철창 속의 수탉을 어루만지는 시늉을 하며,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장엄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 신령한 닭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죄의 냄새를 맡고, 살인자의 손에 묻은 보이지 않는 원귀의 피를 정확하게 가려내는 끔찍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만지면 얌전히 있지만, 만약 사람을 죽인 살인귀가 이 닭의 등을 쓰다듬으면, 이 닭은 하늘이 무너지듯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살인자의 눈을 파먹으려 달려들 것이다! 오늘 본관은 인간의 얕은 지혜가 아닌, 이 신계의 능력으로 진짜 살인범을 색출할 것이다!"
사또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번뜩이는 눈빛에, 방금 전까지 비웃던 백성들의 얼굴에 묘한 긴장감과 경외심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신과 무속 신앙이 깊게 뿌리내려 있던 조선 시대, 사또의 그 엄숙한 태도는 묘한 설득력을 가지며 군중의 심리를 압도하기 충분했습니다.
사또는 이방을 불러 지시했습니다.
"저기 동헌 한구석에 있는 빈 광(창고)의 창문을 모두 두꺼운 가마니로 틀어막아,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 안에 이 신령한 닭을 모셔 두도록 하라!"
이방과 포졸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낡은 창고를 빛 한 줌 없는 완벽한 암실로 만들어 냈습니다. 어둡고 스산한 창고의 입구에 선 사또가, 꿀꺽 침을 삼키는 배동이와 칠성이, 그리고 사건 당일 밭에서 일하며 상황을 구경했던 마을 장정 열 명을 앞으로 불러 세웠습니다.
"자, 이제부터 여기 모인 자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저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가, 손바닥으로 닭의 등을 세 번씩 쓰다듬고 나오도록 하라! 결백한 자라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나, 만약 피 묻은 손으로 닭을 만지는 순간, 닭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동헌을 찢어놓을 것이다! 누구부터 들어가겠느냐!"
사또의 서슬 퍼런 명령이 떨어지자, 마당에 선 사람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범인을 가려내기 위한, 사또의 기막히고도 소름 돋는 심리전의 덫이 마침내 그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4: 어둠 속의 신령한 닭, 범인을 가려낼 기막힌 시험
"자, 이제 더 이상 헛되이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방금 호명된 자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저 캄캄한 창고 안으로 들어가 신계의 등을 세 번씩 쓰다듬고 나오너라! 만약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있어 창고 문 앞에서 주저하거나, 핑계를 대며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버티는 자가 있다면, 본관은 그 자를 하늘을 기만하는 진범으로 간주하고 그 즉시 망나니를 불러 동헌 마당에서 목을 칠 것이다! 명심하라, 결백한 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나, 피를 묻힌 자가 손을 대는 순간 닭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살인귀의 눈알을 파먹으려 들 것이다!"
사또의 벼락같고도 서슬 퍼런 불호령이 너른 동헌 앞마당에 떨어지자, 마당에 불려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일순간 사색이 되어 파리하게 질려버렸습니다. 평생 남의 물건 하나 탐낸 적 없고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순박하고 평범한 백성들조차, 귀신을 보고 원귀의 냄새를 맡는다는 신령스러운 닭이라는 사또의 엄숙한 말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서로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눈치만 보기 바빴습니다. 미신과 무속 신앙이 백성들의 삶 깊숙이 뿌리내려 있던 조선 시대였기에,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모셔 왔다는 사또의 장엄한 거짓말은 군중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압도하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호명되어 나선 것은 온몸이 피딱지와 상처투성이인 칠성이었습니다. 그는 곁에 섰던 포졸의 거친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는 다리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칠성이는 두려움에 떠는 어머니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사또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습니다.
"사또 나리... 저는 비록 비천하고 가난한 농사꾼이오나, 평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이 참담한 누명과 결백을 제 손으로 직접 증명해 보이겠사옵니다."
칠성이는 비장하고도 굳센 표정으로 가마니로 틈새를 모두 틀어막아 칠흑같이 어두운 창고 안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습니다. 끼기기긱-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낡고 무거운 나무 문이 굳게 닫히자, 밖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수백 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창고 쪽으로 쏠렸습니다. 넓은 마당에는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끔찍하고 무거운 정적이 짓누르듯 흘렀습니다.
'만약... 만약에 정말로 저 신령하다는 닭이 미쳐 날뛰어 울어버린다면, 칠성이가 진짜 살인범이 되는 것인가?'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된 눈빛으로 닫힌 문을 뚫어지라 지켜보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리고 칠성이가 무사히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창고 안에서는 닭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도, 푸드덕거리는 거친 날갯짓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밖에서 마음을 졸이던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아아..." 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다음 자, 지체 말고 어서 들어가거라!"
사또의 단호한 명령에 따라, 사건 당일 갈대밭 근처에서 밭을 매고 있던 동네 장정 열 명이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차례차례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하지만 창고 안의 닭은 마치 돌부처라도 된 듯, 혹은 죽어버리기라도 한 듯 쥐 죽은 듯이 얌전하기만 했습니다. 단 한 번의 닭 울음소리도 동헌 마당에 울려 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넓은 마당에 남은 사람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열을 올리며 주장하던 동네 건달, 배동이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배동이는 겉으로는 몹시 태연한 척 헛기침을 큼큼 해대며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지만, 그의 썩어빠지고 교활한 머릿속은 수만 가지 생각과 극심한 공포로 어지럽게 뒤엉켜 미친 듯이 폭풍우를 치고 있었습니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사또 놈이 설마 진짜로 귀신을 보는 신령스러운 닭을 구해온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정신을 차려라 배동아. 세상천지에 귀신을 보고 살인자를 가려내는 미물 짐승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필시 찔리는 구석이 있는 죄인들을 겁주어 스스로 억지 자백을 털어놓게 만들려는 알량하고 뻔한 속임수일 뿐이다.'
배동은 속으로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비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막상 차례가 되어 어두운 창고 문 앞에 홀로 서게 되자 등줄기를 타고 얼음장 같은 식은땀이 비 오듯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두 눈을 시뻘겋게 번뜩이며 자신의 피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고 있을지도 모를 신령한 닭.
'만약... 만약에 저 사또의 말이 사실이라서, 정말로 내가 황 영감의 뒤통수를 쳐 죽일 때 튀었던 그 비릿한 피 냄새를 저놈의 닭이 맡고 발광하며 소리를 지른다면? 그때는 변명할 기회도 없이 꼼짝없이 형장의 이슬로 목이 잘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절대 안 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극도의 불안감과 의심이 배동의 얕은 이성을 차갑게 마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침을 크게 꿀꺽 삼키고는, 뒤에서 밀어대는 포졸들의 거친 재촉에 떠밀려 결국 칠흑 같은 창고 안으로 억지로 발을 들이밀었고,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나무 문이 굳게 닫혔습니다.
창고 안은 들어오는 빛 한 줌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캄캄한 흑암 그 자체였습니다. 시각이 완벽하게 차단되자 배동의 청각과 촉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롭게 예민해졌습니다. 어둠 속 구석 철창 안에서 구구구- 하고 낮게 깔리는 미세한 닭의 숨소리와, 바스락거리는 깃털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의 발소리처럼 공포스럽게 배동의 귓가를 때렸습니다. 배동이 허공을 휘저으며 떨리는 손을 뻗어 철창 안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가자, 따뜻하고 매끄러운 닭의 등이 마침내 배동의 땀에 젖은 손끝에 닿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배동의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 멈춰라! 만약 내가 이대로 이놈의 닭의 등을 쓰다듬었다가, 저놈이 죽은 황 영감의 원통한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면 난 그 자리에서 끝장이다! 밖에서 닭 울음소리가 한 번이라도 들리는 순간, 저 독기 품은 사또 놈이 당장 쳐들어와 내 목을 치고 말 것이 뻔하다!'
궁지에 몰린 교활한 악당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얄팍한 잔꾀가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이 낡은 창고 안은 손을 뻗어도 자기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완벽한 어둠 속이었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또나 포졸들은 그가 닭을 만졌는지, 아니면 안 만졌는지 도무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 굳이 내 목숨을 걸고 저 불길한 닭을 직접 만지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지! 그냥 만진 척 시늉만 그럴싸하게 하고 조용히 밖으로 쓱 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닭이 소리를 지를 일도 절대 없고, 나는 결백한 목격자로 영원히 살인 의심을 완벽하게 벗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저 책상물림 멍청한 사또 놈, 결국 이 천하의 배동이의 기막힌 꾀에 완벽하게 넘어가 버렸구나!'
배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속으로 통쾌한 쾌재를 부르며 비열한 웃음을 소리 없이 질질 흘렸습니다. 그는 닭의 등에 닿았던 손을 마치 불에라도 덴 듯 재빨리 거두어들이고는, 허공에 대고 쓱쓱 소리만 나게 쓰다듬는 흉내만 세 번을 그럴싸하게 반복했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몹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창고 문을 활짝 열고 눈부신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사또 나리! 저 역시 나리의 지엄하신 분부대로 어둠 속에서 닭의 등을 세 번이나 정성껏 쓰다듬었사오나, 보시다시피 신령한 닭은 쥐 죽은 듯 얌전하기만 합디다! 보십시오! 저는 저 끔찍한 살인마가 아니라, 그저 칠성이의 끔찍한 만행을 우연히 목격한 불쌍하고 선량한 증인일 뿐입니다!"
배동이가 사또를 향해 과장되게 허리를 굽히며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밖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닭이 단 한 번도 울지 않자, 역시 칠성이가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맞고, 사또가 귀신을 운운하며 큰소리친 것은 모두 허풍이었다며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청마루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그 모든 얄팍한 과정을 매서운 눈으로 꿰뚫어 보고 있던 사또의 입가에는, 거대한 사냥감을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완벽하게 가둔 노련한 맹수와도 같은 차갑고도 서늘한 미소가 짙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 5: 깨끗한 손바닥, 스스로 얼굴빛을 바꾼 진범
모든 사람들이 창고 안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령하다던 닭은 끝내 울지 않았고, 재판의 결과가 다시 짙은 안갯속 미궁으로 빠지는 듯 보이자 마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차 노골적인 실망과 사또를 향한 비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저것 보게나. 귀신을 보고 피 냄새를 맡는 신령한 닭은 무슨 얼어 죽을 소리! 그냥 장터 국밥집에서 잡아 온 멍청한 촌닭이었구만."
"애꿎은 칠성이만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고, 책상머리에서 글공부만 하던 애송이 사또가 큰소리만 뻥뻥 치더니 아주 꼴좋게 되었네 그려."
배동 역시 자신의 완벽한 꾀가 성공했다고 확신한 듯 짝다리를 거만하게 짚고 서서, 부채질을 하는 사또를 향해 눈을 내리깔며 비열하고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속으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당장 이 지긋지긋한 재판이 끝나면 주막에 가서 막걸리나 한 사발 들이켜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또는 군중의 싸늘한 비웃음과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쥐고 있던 합죽선을 촤르륵 펼치며 자리에서 천천히 위엄 있게 일어났습니다. 사또는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와, 반죽음이 된 칠성이와 거드름을 피우는 배동이, 그리고 밭에서 불려 온 장정들이 일렬로 서 있는 줄 바로 앞까지 다가갔습니다.
"다들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하라! 본관의 판결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자, 캄캄한 창고에 들어가 신계의 등을 만지고 나온 자들은 모두 두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내 눈앞으로 높이, 번쩍 들어 올려라!"
사또의 뜬금없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사또의 기세에 눌려, 이내 칠성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양 손바닥을 허공을 향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습니다. 사또는 뒷짐을 쥔 채 느릿한 걸음으로, 마치 먹잇감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맹수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바닥을 아주 꼼꼼하고 매섭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덜덜 떨리는 칠성이의 손바닥, 그리고 동네 장정 열 명의 손바닥을 차례차례 무표정하게 살피던 사또의 발걸음이 마침내 맨 끝에 서 있던 배동이의 바로 코앞에 우뚝 멈춰 섰습니다. 허공에 들린 배동이의 손바닥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사또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번쩍하고 차가운 불꽃이 튀었습니다.
"여봐라! 포졸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당장 저 간악한 배동이 놈의 오금쟁이를 걷어차 무릎을 꿇리고, 오랏줄로 짐승 묶듯 단단히 포박하라!"
사또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고요해진 동헌 마당을 찢을 듯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건장한 포졸들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영문을 모르고 눈만 껌벅이던 배동이의 다리를 거칠게 걷어차 바닥에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뒤로 무자비하게 꺾어 굵은 포승줄로 꽁꽁 묶어버렸습니다.
"사, 사또 나리!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짓이옵니까! 저는 사또 나리가 시키신 대로 창고에 들어가 닭을 세 번이나 쓰다듬고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걸어 나온 결백한 증인이옵니다! 어찌하여 사람을 쳐 죽인 저 흉악한 칠성이가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저를 묶으란 말씀이십니까! 억울하옵니다!"
배동이가 억울하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발악하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사또의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행동에 충격을 받고 숨을 죽인 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사또는 들고 있던 부채로 배동이의 이마를 툭 치며, 얼음장같이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로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네 이놈! 감히 하늘의 눈을 속이고 본관의 눈을 얄팍한 잔머리로 속이려 드느냐! 저기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칠성이와, 동네 장정 열 명의 손바닥을 네놈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사또의 말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칠성이와 장정들의 허공에 들린 손바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당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의 입에서 "헉!" 하는 경악에 찬 탄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칠성이와 열 명의 장정들의 두 손바닥은 모두 시커먼 숯가루가 진득하게 묻어, 마치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밧줄에 묶인 배동이 단 한 사람의 손바닥만이 티끌 하나 묻지 않고 뽀얗고 하얗게, 너무나도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찌 저 사람들의 손바닥만 시커멓게 변한 것이지?"
"아니, 배동이 저놈 손바닥은 왜 저리 깨끗한가?"
마을 사람들이 도무지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며 수군거리자, 사또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감춰두었던 기막힌 진실을 폭로했습니다.
"본관이 아까 전 캄캄한 창고에 집어넣은 닭은 귀신을 보고 피 냄새를 맡는 신령한 닭 따위가 결코 아니었다! 그저 관아 부엌 아궁이에서 퍼 온 시커먼 숯가루를 닭의 온몸에 빈틈없이 잔뜩 떡칠해 놓은 평범한 촌수탉이었을 뿐이다! 결백한 자라면 본관의 준엄한 명령대로 어둠 속에서 닭의 등을 피하지 않고 정성껏 쓰다듬었을 것이니, 당연히 닭 깃털에 묻어 있던 시커먼 숯가루가 손바닥에 잔뜩 묻어 나오는 것이 마땅한 이치다! 허나, 네놈 배동이는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끔찍하게 두려웠더냐!"
사또는 바닥에 무릎 꿇린 배동이의 코앞으로 성큼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어 잡고 호랑이처럼 무섭게 윽박질렀습니다.
"네놈은 황 영감의 뒤통수를 쳐 죽인 진범이기에, 혹여나 정말로 저 닭이 신령한 능력을 지녀 네 손에 묻은 피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울어발길까 봐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을 것이다. 밖에서는 네놈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이니, 교활하고 비열한 네놈은 닭을 쓰다듬는 시늉만 허공에 대고 빠져나오면 영영 살인마의 의심을 벗을 것이라 멍청하게 착각했겠지! 그 알량하고 추악한 범죄자의 두려움과 잔꾀가, 네놈의 손바닥을 이토록 깨끗하게 만들었고, 바로 그것이 네놈이 살인범이라는 가장 명백하고 빼도 박도 못할 완벽한 증거가 된 것이다! 이래도 하늘을 속이고 변명을 늘어놓을 작정이냐!"
사또가 놓아둔 기막힌 심리전의 덫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논리 앞에, 배동이는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듯 입을 헤벌리게 벌린 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죄지은 자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심리를 완벽하게 역이용하여, 범인 스스로 자신의 추악한 얼굴빛과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만든 명관의 무시무시하고도 천재적인 판결이 완벽하게 빛을 발하며 동헌 마당을 전율로 몰아넣는 순간이었습니다.
※ 6: 밝혀진 원한의 진실, 통쾌한 판결과 풀려난 억울함
"아... 아니옵니다! 나리!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이옵니다! 제가, 제가 그저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닭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실수로 헛손질을 한 것일 뿐, 단지 손이 깨끗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황 영감을 때려 죽였다는 끔찍한 증거가 될 수는 없사옵니다! 사람을 죽일 흉기도, 훔친 돈도 제게는 없지 않습니까!"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배동이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듯 발악하며 눈을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둠 속에서 닭을 만지지 않은 배동이의 깨끗한 손바닥이라는 명백한 심리적 물증과 사또의 서슬 퍼런 기세 앞에, 마을 사람들의 여론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돌아서 배동이를 향해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사또는 싸늘하고도 멸시 가득한 표정으로 옥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봐라! 저 뻔뻔하고 구제 불능인 놈을 당장 형틀에 묶고 양다리에 굵은 주리를 틀어라! 저 간악한 놈의 입에서 황 영감을 쳐 죽일 때 쓴 흉기를 어디다 숨겼는지, 훔쳐 간 전대의 행방이 어디인지 명백한 자백이 쏟아져 나올 때까지 저놈의 다리뼈를 가루로 만들어버려라!"
사또의 준엄하고도 무자비한 명령에 옥리들이 거칠게 달려들어 배동이를 형틀에 눕히고 꽁꽁 묶었습니다.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할 때만 교활하게 돌아가던 머리였지,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비겁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던 배동이었습니다. 굵은 물푸레나무 몽둥이가 다리 사이에 끼워지고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압박이 가해지자, 배동이는 단 세 번의 비명도 채 넘기지 못하고 하늘이 무너져라 눈물 콧물을 질질 쏟으며 살려달라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제 다리가 부러집니다! 제가... 제가 죽였습니다! 도박판에서 잃은 노름빚을 갚으라며 황 영감이 저를 개 패듯 패고 멸시하는 바람에, 순간 눈이 뒤집혀 갈대밭에서 몰래 뒤따라가 돌덩이로 뒤통수를 내리쳤습니다! 흉기로 쓴 피 묻은 돌멩이와 빼앗은 황 영감의 돈 주머니는, 시신 근처 갈대밭 속 가장 깊은 수렁 진흙 속에 깊이 파묻어 두었사옵니다!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사또 나리!"
배동이의 끔찍하고도 명백한 살인 자백이 고요했던 동헌 앞마당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관아의 포졸들이 즉시 갈대밭 현장으로 출동하여 배동이가 짚어준 늪지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배동이의 진술과 정확히 일치하는 피와 머리카락이 엉겨 붙은 큼지막한 돌멩이와 황 영감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무거운 돈 주머니를 고스란히 찾아내어 동헌 마당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물증과 진범의 입에서 튀어나온 자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참으로 통쾌하고도 짜릿한 권선징악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천인공노할 금수만도 못한 더러운 놈! 제 욕심과 돈에 눈이 멀어 빚을 갚기 싫어 사람을 쳐 죽인 것도 모자라, 죄 없고 착하게 살아온 칠성이에게 그 무서운 살인의 죄를 뒤집어씌워 억울한 생사람을 잡으려 하다니! 너의 그 추악하고 간악한 죄는 능지처참을 당하여 사지가 찢겨도 모자랄 것이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관아에서 가장 깊고 차가운 지하 사형 옥에 가두고, 며칠 뒤 한양에 장계를 올려 참수에 처하도록 하라!"
사또의 벼락같은 불호령에 포졸들이 사색이 된 배동이를 짐승처럼 질질 끌고 어두운 감옥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동헌 마당에 숨죽여 모여 있던 수백 명의 백성들은 사또의 명석하고 지혜로운 판결이 진범을 잡아내자, 일제히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명관이십니다! 하늘이 우리 고을에 내리신 명판결이십니다!"
사또는 대청마루에서 걸어 내려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만신창이가 되어 땅바닥에 무릎 꿇어 있던 칠성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습니다. 사또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자신이 직접 두 손을 내밀어 칠성이를 짐승처럼 옭아매고 있던 거친 포승줄을 다정하고 부드럽게 풀어주었습니다.
"칠성아. 무능하고 부패한 이전 관아의 탓에 네가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그동안 지하 감옥에서 지옥 같은 고통을 겪게 하여 이 고을의 사또로서 참으로 낯이 뜨겁고 미안하구나. 피 흘리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구하려 했던 너의 그 착하고 맑은 심성은 하늘이 알고 땅이 기억할 것이니, 이제 억울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당당하게 너를 기다리는 홀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거라."
"사또 나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통하게 목이 잘려 죽어갈 뻔한 제 가여운 목숨을 이리 구해주신 이 크고 무거운 은혜를, 저 칠성이는 죽어서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칠성이는 사또의 푸른 관복 자락을 부여잡고 엎드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칠성의 눈먼 홀어머니 역시 달려와 아들을 부둥켜안고 피눈물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풀려나 다시 맺어진 모자의 뜨거운 상봉에,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의 눈시울도 모두 붉게 물들며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힘없고 억울한 자의 피눈물을 닦아주고, 교활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던 악당의 머리 꼭대기에서 범인의 공포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진실을 밝혀낸 젊고 지혜로운 사또의 '신령한 숯가루 수탉' 판결 이야기는, 그날 이후 조선 팔도 구석구석으로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며 핍박받던 백성들의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전설적인 사이다 야담으로 오래도록 칭송받으며 훈훈하게 전해져 내려갔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야담광장에서 들려드린 '신령한 닭' 판결 이야기,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셨나요? 증거 하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죄지은 자의 불안하고 교활한 심리를 완벽하게 역이용해 진실을 밝혀낸 젊은 사또의 기막힌 지혜가 참으로 통쾌하고 감탄스럽습니다.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죄를 숨기려 해도, 결국 진실은 숯검정처럼 까맣게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권선징악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억울한 눈물 없이 모두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재미있고 감동적인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